일본 법을 베끼다시피 했으니
민법에 주물, 종물이라는 개념이 있다. 종물은 주물에 부속된 부속물이다. 종물은 주물에 딸린 물건으로 주물의 사용에 도움을 주는 물건이다. 일테면 시계가 주물이면 시곗줄은 시계의 종물이다. 시곗줄을 시계에서 분리할 수 있지만 시곗줄 없는 시계는 사용하기가 대단히 불편하다. 시곗줄이 있어야 시계는 사용하기 편하다. 자물쇠와 열쇠는 더욱 분명하다. 자물쇠가 주물이고 열쇠가 종물이다. 열쇠가 없다면 자물쇠는 있으나마나다. 자물쇠를 사용하는 데 열쇠는 결정적으로 필요하다. 민법 제100조 제1항은 주물과 종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 물건의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가 어떤가. 이런 표현을 일상 언어생활에서 쓰나? '상용'은 가끔 쓴다 쳐도 '공하다'를 국어에서 쓰나? '공하기 위하여'의 '공하기'는 '供하기'인데 '공(供)하다'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있나?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국어사전에도 '공하다'는 없다. 국어에 쓰이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국어사전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민법에는 '공하기 위하여'가 쓰이고 있나? 답은 일본 민법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민법의 해당 조항은 우리 민법과 판박이다. 우리가 1950년대에 민법을 제정할 때 일본 민법을 그대로 가져다 썼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법에 '供する'가 있으니 우리 법에 '공하다'를 가져다 쓴 것이다. 정작 국어에는 '공하다'라는 말이 없는데도 말이다.
'공(供)하다'는 민법에만 있지 않다. 형법에도 있고 형사소송법에도 쓰이고 있다. 다음과 같다.
민법, 형법, 형사소송법은 한결같이 1950년대에 제정된 법이다. 당시에 이들 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의 법을 참조했을 뿐 아니라 사용하는 말조차도 일본어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생소하기 짝이 없는 민법 제100조의 '그 물건의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는 '그 물건의 사용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또는 '그 물건을 사용하기 위하여'라고 할 때 국어답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법에서 일본 물을 빼야 한다.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 내년이면 광복 8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