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한글로만 바꿔 놓고 말긴가
형법 제136조에서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의 '조지하거나'는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하고도 남는다. '조지하다'라는 말이 낯설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법전은 기본적으로 한글로 제공되지만 형법이 제정되던 1950년대는 물론이고 1990년대 말까지도 법조문은 한자로 적혀 있었다. 그때는 법전에 '公務員에 對하여 그 職務上의 行爲를 强要 또는 阻止하거나'라 적혀 있었고 '阻止'의 뜻은 짐작할 수 있었다. '阻'가 '沮止(저지)'의 '沮(저)'와 모양이 엇비슷해서 '阻止하거나'를 '저지하거나'로 이해하는 게 보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전을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가 되었고 '조지하거나'를 접하는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보는 말에 의아함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런 비슷한 일이 또 있다. 한자로 썼을 때는 뜻을 파악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한글로 쓰면 뜻이 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꽤 많다. '단행'도 그런 예에 속한다. 형법 제64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한자 없이 '단행'으로 되어 있어 '단행'이 무슨 말인지 의문을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단행'은 한자로 '但行'이다. '但'이 있는 행이라는 것이다. 제62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제64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제62조 단행'은 '다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그 집행을 종료하거나 면제된 후 3년까지의 기간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를 가리킨다. '다만'이 곧 '단'이고 '단'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단행'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단행'이 '다만'으로 시작되는 문장임을 알겠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은 '단행'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런 의사 불통을 막을 수 있을까. '단행' 대신 '단서'라고 하면 된다. '단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행'은 국어사전을 찾아보아도 없다. 단어의 뜻을 몰라 사전을 찾았는데 사전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온통 한자로 의사소통하던 1950년대에는 '但行'이 통했지만 오늘날 '단행'은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형법을 개정할 때에 '단행'은 '단서'로 바꾸어야 하겠다.
그리고 '단행'은 형사소송법에도 있다. 형사소송법 제447조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도 역시 '단행'은 '단서'로 바꿈직하다. 법조문은 대대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한자어는 죄다 한자로 적었던 1950년대와 한글 전용이 보편화된 지금은 언어 환경이 너무나 다르다. 한자를 단순히 한글로만 적어 놓으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쉽게 통하는 말로 바꾸어야지 그냥 두고 있으니 안일하고 불친절하다.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왜 덮어두고 외면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