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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13. 2024

'인', '지'가 국어인가

케케묵었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앞에서 형법 제64조와 형사소송법 제447조에 있는 '단행'이 문제임을 지적했다. 형법, 형사소송법이 제정되던 1950년대에는 한자로 但行이라 돼 있었으므로 '단(但)'이 들어간 문장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한글로 법조문을 제공하는 오늘날 법전에서는 '단행'이 무슨 뜻인지 좀체 파악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더 있다. 예컨대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에는 '동전'이라는 말이 여러 조문에서 쓰이고 있는데 주로 제목에 들어 있다. 이들 법이 제정되었을 때는 한자로 '同前'이라 돼 있어서 '(제목이) 앞 조와 같다'는 뜻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글만 사용하는 요즘 법전에 '동전'이라 돼 있어 '同前'임을 모르는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자로 씌어 있었을 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글만 쓰는 요즘 법전에서는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예가 또 있다. 민법 총칙 제2장의 제목인 ''이 그것이다.


민법

제2장

제3조(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제3장 법인

제31조(법인성립의 준칙) 법인은 법률의 규정에 의함이 아니면 성립하지 못한다.


제2장은 ''이고 제3장은 '법인'이다. '법인'이 무엇인지는 웬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은 어떤가. ''을 보고 당황하지 않겠는가. ''은 국어 단어가 아니다. 더구나 제2장 제목 바로 다음에 나오는 제3조 조문은 '은'이 아니라 '사람은'으로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제목에서는 '사람'이라 하지 않고 ''이라 하나. 


제2장과 제3장을 비교해 보자. 제3장은 제목이 '법인'이고 제31조에서 '법인은'으로 시작한다. 제목과 본문이 일치한다. 그러나 제2장은 제목이 ''이고 제3조에서 '사람은'으로 시작한다. 제목과 본문이 일치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민법 총칙의 제2장은 '사람'의 권리, 의무에 대해 다루고 제3장은 '법인'의 권리, 의무에 대해 다룬다. 그렇다면 제2장의 제목은 '사람'이어야지 ''일 이유가 없다. ''은 국어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의 장막' 같은 관용구에서 ''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런 관용구 외에서 ''을 쓰는 일은 없다. 일테면 "저기 인이 지나간다." 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나. 그런 말은 쓰이지 않는다. 민법 총칙 제2장의 제목 ''은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상법에 있다. 상법 제364조는 다음과 같다.


상법

제364조(소집지) 총회는 정관에 다른 정함이 없으면 본점소재지 또는 이에 인접한 에 소집하여야 한다.


상법 제364조는 주식회사의 주주총회 장소에 관한 규정이다. '본점소재지 또는 이에 인접한 에 소집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인접한 '의 ''가 이상하지 않은가. 국어에서 ''를 장소의 뜻으로 쓰는 일은 없다. 의당 ''이라 해야 마땅하다. 


'', '' 등은 국어에 없는 말이다. 국어 단어로 쓰이지 않는다. 1950년대와 1960년대초에 민법, 상법을 제정할 때 '', ''로 썼던 것들인데 '사람', ''으로 바꾸지 않고 그냥 '', ''로 적고 있다. 케케묵었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한글 전용 시대에 맞게 표현을 바꾸어야 한다. 법령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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