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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Sep 27. 2024

몽리자를 아십니까

끈덕진 저항

말은 꾸준히 변한다. 그동안 써왔던 말이 슬그머니 사라지기도 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말이 새로 등장해 쓰이기도 한다. 옛 조상들이 썼던 '뫼'라는 말을 지금 쓰나. '뫼'는 '산'으로 대체되었다. '가람'은 또 어떤가. '강'으로 바뀌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정구', '송구' 등을 아는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널리 쓰이던 말이다. 그러나 '정구'는 '테니스', '송구'는 '핸드볼'로 바뀐 지 오래다. 그 반대 방향으로 바뀐 것도 있다. 전에는 외래어 '복싱'을 많이 썼는데 요즘은 보통 '권투'라 한다. '다방'이란 말도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 '커피숍', '카페'가 대세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있고 말도 따라서 변한다.


'몽리자'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蒙利者이고 뜻은 '이익을 얻는 사람. 또는 덕을 보는 사람.'이다. '몽리자'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널리 쓰이던 말이었다. 그리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에 제법 나오던 말이었다. 그런데 '몽리자'는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자취를 감추었다. 蒙利者는 원래 중국어다. 그게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다가 197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소멸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 중에 이 말을 알고 있거나 쓰는 사람은 드물다. 


증거가 있다. 1996년 대법원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지만 법률에서 쓰이는 말 157개를 쉬운 말로 바꾸는 게 좋겠다며 법제처에 의견서를 냈는데 '몽리자'는 '이익을 얻은 사람'으로 바꿀 것을 권고했다. 민법 제233조에 '몽리자'가 들어 있는데 이를 쉬운 말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1996년에 벌써 대법원은 '몽리자'를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로 보았던 것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신문에 곧잘 쓰였던 말인데 말이다.


'몽리자'는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바꿔야 할 말 대상에 올랐다. 2002년 1월 국립국어연구원이 낸 보고서 '법조문의 문장실태조사'에 '몽리자'는 '이익을 보는 이'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들어 있었다. 2002년 4월 국회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용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하는「법률표준화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한다고 하면서 '몽리자'는 '수익자'로 바꾸겠다고 했다. 2003년 국립국어원은 '쉽게 고쳐 쓴 우리 민법'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여기에도 역시 '몽리자'(이용하는 사람)가 고쳐야 할 말에 들어 있었다. 


2015년 8월 26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민법 개정안에도 다른 많은 난해한 한자어와 함께 '몽리자'가 들어 있었다. '몽리자'는 '이용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민법 개정안은 당시 제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2018년 10월 한글날을 앞두고 행정안전부는 일본식 한자어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 9개를 정비과제로 선정했다고 밝히며 '몽리자'는 '수혜자' 또는 '이용자'로 바꾸겠다고 했다. 2019년 11월 법무부는 제20대 국회에 민법 개정안을 제출했는데 여기도 '몽리자'는 '이용자'로 바꾸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은 심의되지 않았다.


이상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몽리자'를 쉬운 말로 고치려는 시도가 대법원, 법제처, 국회, 국립국어원, 행정안전부 등 곳곳에서 이뤄져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법 제233조에서 '몽리자'는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다음과 같다.


민법

제233조(용수권의 승계) 농, 공업의 경영에 이용하는 수로 기타 공작물의 소유자나 몽리자의 특별승계인은 그 용수에 관한 전소유자나 몽리자의 권리의무를 승계한다.


'몽리자'는 이익을 얻는 자라는 뜻이니 그냥 '이용자'라고 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데 '몽리자'라 돼 있어 읽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법이 아니라 무슨 암호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가. 기성 법조인은 무슨 뜻인지 아니까 쉽게 바꾸는 데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2024년 3월 5일 국민일보에 저명한 민법학자인 송덕수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기고한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어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송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이 법을 어려움 없이 읽고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국민을 생각할 때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송 교수가 고쳐야 할 말로 든 예 가운데 '몽리자'가 들어 있다. '이용자'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어쨌거나 '몽리자'는 거의 30년 전부터 쉬운 말로 바꾸고자 하는 시도가 이어져 왔지만 아직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계속 이대로 갈 것인가.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과연 국민을 생각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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