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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03. 2024

해하다 vs 해치다

안갯속에 싸인 듯

민법 제38조와 제133조는 다음과 같다. 여기에 민법 제38조와 제133조에 '해하다'라는 말이 있다. 


민법

제38조(법인의 설립허가의 취소)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 행위를 한 때에는 주무관청은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제133조(추인의 효력) 추인은 다른 의사표시가 없는 때에는 계약시에 소급하여 그 효력이 생긴다. 그러나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 못한다.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제3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가 무슨 뜻인지 앞뒤 문맥으로 미루어 대체로 감은 잡겠지만 '해하는', '해하지'라는 말이 많이 들어본 말인가. 아닐 것이다. 국어사전에 '해하다'가 올라 있고 '이롭지 아니하게 하거나 손상을 입히다.'라 뜻풀이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고 다 널리 쓰이고 그래서 익숙한 말일까. 아니다.


국어사전에는 옛날에는 널리 쓰였지만 지금은 안 쓰이는 말도 있고 심지어 옛날에도 쓰인 흔적이 없는 말까지 있다. 일테면 '이(利)하다'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있다. '이(利)하다'는 형용사로서 '이익이나 이득이 되다.'라 뜻풀이되어 있다. '몸에 이한 약'이라는 용례까지 들어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해하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해하다', '이하다'에 해당하는 일본어 단어가 있다. 각각 '害する', '利する'가 그것으로 일본어 'する(스루)'는 '하다'라는 뜻이다. 민법 제133조의 '권리를 해하지'는 일본 민법의 표현을 빼다 박았다. 해당 일본 민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無権代理行為の追認)

第百十六条 追認は、別段の意思表示がないときは、契約の時にさかのぼってその効力を生ずる。ただし、第三者の権利を害することはできない。


즉 우리 민법 제133조의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는 일본 민법을 그대로 갖다 옮긴 것이다. 일본 민법을 받아들이더라도 표현만큼은 '제삼자의 권리를 해치지 못한다'라고 했어야 했다. 일본 민법에 '害する'라 돼 있다고 해서 우리말로 '해하지'라고 해야 했나? 왜 우리말에 널리 쓰이는 '해치다'를 쓰지 않았나. 


우리 민법은 태생적으로 일본 민법을 가져온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표현만큼은 한국어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왜 일본어 냄새가 풀풀 나는 표현을 지금껏 그대로 두고 있나. 한국은 일본에서 배워 이젠 여러 분야에서 일본을 능가한다. 그렇다면 법조문도 일본 때를 벗겨내고 바르고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바꾸어야 하지 않나. 아니, 일본어 티는 접어두고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제삼자의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금세 알 수가 없다. 안갯속에 싸여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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