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로만 바꾸는 게 능사일까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은 헌법과 함께 기본 6법이다. 이들 기본법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 걸쳐 제정되었다. 당시는 국한 혼용을 하던 시대였고 법도 당연히 한자로 씌었다.
한 예로 상법 제4조와 제5조를 보자.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제4조의 제목은 '商人-當然商人'이고 제5조의 제목은 '同前-擬制商人'이다. 여기서 '同前'이 무엇일까. 앞과 같다는 뜻이다. 즉 제4조의 제목 '商人'과 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자로 적혔을 때는 '同前'이 '商人'을 가리키는 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같을 同', '앞 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법전은 한글로 바꾸어 제공한다. 그래서 상법 제5조는 다음과 같다.
그냥 '동전'이라고 되어 있으니 '동전'이 뭔가 하고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同前이라 되어 있었을 때는 앞 조의 제목과 제목이 같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지만 한글로 적혀 있으면 그런 사정을 알기가 쉬운가. 만일 '앞과 같음'이라면 쉽게 알겠지만 '동전'은 좀체 쓰지 않는 말이라 어리둥절하기 마련이다.
상법에만 이런 게 있는 게 아니다. 민법 제354조, 제378조, 제402조, 제514조, 제570조, 제571조, 제641조, 제668조, 제669조에도 '동전'이 나온다. 형사소송법 제43조, 제226조, 제227조, 제291조, 제341조, 제381조, 제417조, 제421조, 제434조, 제471조에도 '동전'이 있다. 한 예로 민법 제513조와 제514조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법무부가 2019년 제20대 국회에 제출한 민법개정안에는 제514조가 다음과 같이 바뀌어 있었다.
'동전'이란 말을 쓰지 않았고 대신 '배서의 자격 수여력'을 다시 밝혀 주었다. '동전'이란 말을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뜻을 전달할 수 있다. 앞 조의 제목을 되풀이해주면 된다.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다. 이렇게 뜻을 알기 쉽게 한 민법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아 자동폐기되었다. 법을 국민이 알기 쉽게 개선하는 게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이제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