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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08. 2024

지득한?

형법과 일부 법에만 남아 있다

'지득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이다. 지득은 '알 지', '얻을 득'의 知得으로 그러나 형법에 이 '지득하다'가 들어 있다. 형법 제317조는 다음과 같다.


형법

제317조(업무상비밀누설) ①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약제사, 약종상, 조산사,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공증인, 대서업자나 그 직무상 보조자 또는 차등의 직에 있던 자가 그 직무처리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1997. 12. 13.>

②종교의 직에 있는 자 또는 있던 자가 그 직무상 지득한 사람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직무처리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 '직무상 지득한 사람의 비밀'이라는 문맥에서 알 수 있듯이 '지득한'은 '알게 된'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직무처리중 알게 된 타인의 비밀', '직무상 알게 된 사람의 비밀'이면 될 것을 '지득한'이란 말을 쓴 것은 왜일까. 


형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10년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언어 습관이 형법에 배어 있는 것은 당연했다. '知得'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는 굉장히 널리 쓰였던 말이었다. 당시 신문기사 검색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왜 일제강점기에 '知得'이란 말이 그토록 널리 쓰였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어에서 '知得'이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형법에 들어 있는 '知得한'은 일본어 흔적이다. 


'知得한'은 형법 외에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에도 들어 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에 제정되었고 보안관찰법은 1975년에 제정된 사회안전법의 계승이다. 그리고 1962년에 제정된 정당법에도 '지득하다'가 들어 있다. 모두 상당히 오래된 법률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소수의 법률을 제외하고는 다른 수많은 법률에서는 '지득한' 대신에 '알게 된'이 쓰이고 있다. 몇 예만 들어 보이면 개인정보보호법,  건축물관리법, 건축사법, 결핵예방법, 경범죄 처벌법, 공직자윤리법, 국가공무원법, 국회법, 국민연금법, 상법, 소득세법, 약사법, 주택법, 청소년 보호법, 특허법, 화장품법 등과 같은 법률에서 비밀 누설 금지를 규정하면서 '지득한'이 아니라 '알게 된'이라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형법, 국가보안법 등에 들어 있는 '지득한'도 똑같이 미밀 누설 금지에 관한 규정에 들어 있는데 왜 이들 '지득한'은 '알게 된'으로 바꾸지 않는가. 국가 법령 체계상 같은 뜻을 지닌 말은 통일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지득한'은 거의 100년 전 말이다. 지금은 '지득하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법률에서 '지득한' 대신 '알게 된'이라고 하고 있기도 하다. 형법을 비롯한 몇몇 법에만 남아 있는 '지득한'도 법을 개정해서 '알게 된'으로 바꾸어야 하겠다. 끌어안고 있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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