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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Oct 07. 2024

노화

맨정신으로 살기가 쉬운가

아침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독산역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마침 독산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중에서 한 할머니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저씨, 전철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황당했다. 전철역에서 나오면서 전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다니! 


할머니에게 나를 따라오시라고 했다. 얘길 들어보니 할머니는 오류동역에 갈 건데 전철을 잘못 탔다. 인천행을 타야 오류동역에 가는데 천안 방향 열차를 탔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할머니는 독산역에서 내렸을까. 추측컨대 차 안에서 누군가에게 물었을 것이다. 오류동역이 몇 정거장 남았느냐고. 당연히 전철을 잘못 탔다고 했을 것이고 화들짝 놀란 할머니는 그만 독산역에서 내려 역을 나왔던 거 같다. 그러다 내게 길을 물었던 거고.


할머니와 함께 광운대행 열차를 탔다. 구로역에 닿았을 때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저걸 타고 올라가서 인천행을 타시라고 했다. 할머니는 고맙다 인사하고 내렸다. 오류동역까지 무사히 잘 갔을지 모르겠다. 내가 좀 더 친절했더라면 같이 내려서 인천행 타는 것까지 보고 왔을 텐데 그렇게까진 하지 못했다.


자주 다니고 활동하면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출입을 않다가 모처럼 밖에 나서니 뭐가 뭔지 모른다. 오류동역에 가려면 천안 방향 차를 타면 안 되고 인천행을 타야 한다는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이 길을 나선 것 같다. 독산역에서 오류동역을 가려면 전철역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역 안에서 반대 방향의 전철을 타야 한다는 지식도 없었다. 누가 친절히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던 것 같고 설령 친절히 알려줬다 해도 그걸 이해하고 기억하지도 못한 것 같다.


그 할머니가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 물정이 어둡지는 않았을 것이다. 젊었을 적엔 누구 못지않게 생활력 강하고 씩씩했을지 모른다. 어렸을 땐 아주 총명했던 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차츰 노화하면서 활동이 줄어들고 그만 뇌의 퇴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온다. 다만 좀 더 빨리 오는 사람, 천천히 오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사실 혼자 외출할 정도면 요양병원에서 365일 누워 지내는 노인에 비하면 육체 건강은 엄청 좋은 편이다. 다만 육체 노화에 비해 정신 노화가 좀 빨리 온 게 아닌가 싶어 보인다.


나도 노화를 걱정할 나이가 됐다. 지금 괜찮다고 늘 이렇진 않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새 뇌가 퇴화할지 모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퇴화가 빨라질 수도 있고. 예전에 한 저명한 시인이 기억력 감퇴를 막기 위해 수많은 히말라야 산 이름을 외운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었나 모르겠다. 기억력이 다가 아닐 것이다. 판단력, 이해력, 배려하는 마음, 공감하는 능력 등등이 어우러져야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게다. 맨정신으로 살기가 어디 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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