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 '차등'은 오늘날의 말이 아니다
1919년 3월 1일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吾等은玆에我朝鮮의獨立國임과......"로 시작한다. 여기서 '吾等(오등)'은 '우리'라는 뜻이다. '吾等은'은 '우리는'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이라 하지 않고 '오등은'이라고 하는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吾等'은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다. 사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를 100년 전에 '오등(吾等)'이라 했듯이 '이것들'이나 '이들'을 100년 전에는 '차등(此等)'이라 했다. 이 '차등(此等)'도 '오등(吾等)'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쓰이지 않게 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법에는 '차등(此等)'이 들어 있다. 형법 제317조에 '차등(此等)'이 있다.
형법 제317조는 의사, 변호사 등 직무상 남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직무 처리 중에 알게 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처벌한다는 규정이다. 그런데 여기에 '보조자 또는' 다음에 '차등'이란 말을 썼다. '이와 같은'이라는 뜻이다. 한자로 '此等'이라고 적혔을 때는 그나마 한자를 통해 뜻을 추측할 수 있었다. '此'는 '이 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법전은 한자를 한글로 바꾸어 제공한다. 그래서 '此等'이 아니라 '차등'이라 되어 있다. 한글 '차등'이 '此等'일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날 '차등'이란 말은 수많은 법률 조문에서 쓰이고 있다. 몇 예를 들면 고등교육법,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국민건강보험법,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도로교통법, 방송법, 소득세법, 식품위생법 등에 '차등'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 법에 쓰인 '차등'은 '此等'이 아니라 '差等'이다.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차등'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차등'은 '差等'이지 '此等'이 아니다. '차등(此等)'은 오늘날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형법 제317조에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형법에 남아 있는 '차등(此等)'은 '이와 같은'이나 '이와 유사한'으로 바꾸어야 마땅하다. 1950년대에 만들어진 형법 조문은 오늘날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