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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가 사람을 뜻하나

이상한 모방

by 김세중

형법 제335조는 준강도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강도는 뭐고 준강도는 뭔가. 강도는 남의 물건을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여 뺏는 것을 말한다. 폭행, 협박 없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절도와 구별된다. 그럼 준강도는? 준강도는 강도를 하고 나서, 뺏은 물건을 도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또는 체포를 면하기 위해, 또는 범죄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준강도도 강도와 같은 정도로 처벌한다고 형법 제335조는 규정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형법

제335조(준강도)

절도가 재물의 탈환에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는 제333조 및 제334조의 예에 따른다.


'재물의 탈환에 항거하거나'는 '물건을 뺏긴 사람이 물건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에 대해 항거하거나'의 뜻이다. '체포를 면탈하거나'는 '체포되지 않으려고'라는 뜻이다. '범죄의 흔적을 인멸'은 '범죄의 흔적을 없앨'이란 뜻이다.


'탈환', '면탈', '인멸' 같은 말이 어렵긴 하지만 전혀 이해 못할 말은 아니어 보인다. 참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문장 첫머리에 나오는 '절도'는 어떤가.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우리는 '절도'라고 할 때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위'를 뜻하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의 뜻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형법 제335조의 '절도'는 행위가 아니다. '폭행 또는 협박한'의 주어이기 때문에 '절도한 사람'의 뜻이다. 그러나 '절도한 사람'의 뜻으로 '절도'라고 하는 일이 있나?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절도범이나 도둑이라고 한다. "저 사람이 절도범이야."라고 하지 "저 사람이 절도다."라고 하는 말을 들어봤나?


그럼 형법 제335조의 '절도'는 어떻게 해서 '절도범'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을까. 추측이기는 하지만 일본 형법을 받아들이면서 이런 일이 빚어졌다고 여겨진다. 해당 일본 형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 형법

第二百三十八条 窃盗が、財物を得てこれを取り返されることを防ぎ、逮捕を免れ、又は罪跡を隠滅するために、暴行又は脅迫をしたときは、強盗として論ずる。


일본 형법 제238조는 우리 형법 제335조와 내용이 사실상 같다. 그리고 '절도(窃盗)가'로 시작되는 것도 똑같다. 더욱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일본에서도 '窃盗'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절도 행위'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지 '절도한 사람'으로는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어에서는 절도한 사람을 '窃盗犯' 또는 '泥棒'(도로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일본 형법이 저지른 실수 내지 오류를 우리 형법이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1945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지만 1953년에 제정된 형법은 일본 형법을 대폭 참조했다. 그리고 무려 71년이나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이제 숨을 돌리고 우리 형법에 남은 일본어 찌꺼기를 걸러낼 때도 됐다. 움켜쥐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다. 모름지기 법조문이라면 말이 돼야 하지 않나.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형법 제335조 "절도가 재물의 탈환에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는"은 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왜 형법에서 '窃盗'를 '窃盗犯'과 같이 바꾸지 않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그들 사정이다. 우리가 그것마저 닮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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