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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습범인 죄?

상식에 맞아야 하지 않나

by 김세중

형법 제335조의 "절도가 재물의 탈환에 항거하거나 체포를 면탈하거나 범죄의 흔적을 인멸할 목적으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는"에 들어 있는 '절도'는 훔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훔친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상에서 '절도'라는 말이 '훔친 사람' 즉 '절도범'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일은 사실상 없다. 일본 형법 조문의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옮겨온 결과다.


반대로 '사람'의 뜻으로 보통 쓰이는 말을 '범죄'의 뜻으로 쓴 법조문도 있다. '상습범'이 그것이다. 형사소송법 제95조는 피고인의 보석 청구가 있을 때는 몇 가지 경우 외에는 보석을 허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몇 가지 경우란 심각한 중죄인일 때를 가리킨다. 조문은 다음과 같다.


형사소송법

제95조(필요적 보석) 보석의 청구가 있는 때에는 다음 이외의 경우에는 보석을 허가하여야 한다. <개정 1973. 12. 20., 1995. 12. 29.>

1.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

2. 피고인이 누범에 해당하거나 상습범인 죄를 범한 때

3. (이하 생략)


그런데 제2호가 이상하다. 피고인이 누범에 해당하거나 상습 범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보석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인데 '누범에 해당하는 때'는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없다. 누범의 뜻만 알면 된다. 누범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사람이 3년 안에 다시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상습범인 죄를 범한 때'는 어떤가? 이게 무슨 말인가? '상습범인 죄'가 말이 되나?


'상습범인 죄'가 말이 되려면 '죄가 상습범이다'가 말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 죄는 상습범이다'라는 말을 쓰나? '그 죄는 상습범죄이다'는 말이 되지만 '그 죄는 상습범이다'는 낯설기 짝이 없지 않나?


물론 국어사전에 '상습범'의 뜻풀이가 '어떤 범죄를 상습적으로 저지름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또는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이라 돼 있기는 하다. '상습범'이 '범죄'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풀이되어 있다. 문제는 그런 용법으로 쓰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상습'은 '상습적으로 죄를 저지르는 사람'으로 쓰는 게 보통이다.


'상습범인 죄를 범한 때'는 국어사전을 들이댄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상식에는 맞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굳이 '상습범'이라는 말을 써야 했을까. '상습'이나 '상습적'이라고 하면 안 될까. '상습범죄'라고 했어도 좋았다.


'상습범인 죄를 범한 때'라는 표현은 마치 일부러 읽는 사람에게 골탕을 먹이기 위해 만든 표현 같다. 왜 이런 장애물을 두는가.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국민이 법을 지키기를 바란다면 법은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상식에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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