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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매할 권리를 보류한?

법은 꼭 어렵게 써야 하나

by 김세중

법률용어 중에 환매라는 게 있다. 매매 중에서 좀 특별한 것인데 매매계약과 동시에 특약을 맺어 판 사람이 언젠가 되살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환매다. 환매는 민법 제590조에 들어 있다. 그 제1항은 다음과 같다.


민법

제590조(환매의 의의) ①매도인이 매매계약과 동시에 환매할 권리를 보류한 때에는 그 영수한 대금 및 매수인이 부담한 매매비용을 반환하고 그 목적물을 환매할 수 있다.


여기에 '환매할 권리를 보류한'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보류하다'는 '처리하지 않고 미루어 둔다'는 뜻인데 '환매할 권리를 보류한'이면 환매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인가, 가지지 않았다는 것인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법의 취지는 환매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매할 권리를 보류한'은 적절한 표현인가. 아니다. '보류한'은 잘못 쓰인 말이다. 과연 2019년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민법개정안에 제590조는 다음과 같이 바뀌어 있었다.


제590조(환매의 의의) ① 매도인이 매매계약과 동시에 환매할 권리를 유보(留保)한 경우에는 그가 받은 대금과 매수인이 부담한 매매비용을 반환하고 그 대상물을 환매할 수 있다.


'보류한'을 '유보한'으로 바꾸었다. '보류한'이 문제가 있다고 보았으니 '유보한'으로 바꾼 것 아니겠는가. '보류한'에는 '가진다'는 뜻이 없지만 '유보한'에는 '가진다'는 뜻이 들어간다고 보고 '유보한'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자동폐기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보류한'이다.


그런데 개정안의 '유보한'이 최선이었을까. 법률가들의 전문적인 토론이 따라야 하겠지만 일반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유보(留保)한'보다는 오히려 '보유(保有)한'이 더 나아 보인다. '보유한'이야말로 '가진'의 뜻이 명확히 들어 있으니 말이다. 아니면 더 알기 쉽게 그냥 '가진'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법에는 꼭 한자어를 써야만 하나. 어쨌거나 '유보한'으로 바꾼 개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보류한'인데 민법 제정 때 그대로인 '보류한'은 도무지 맞지 않는다. 법의 취지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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