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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유감

보도 방향이 틀렸다

by 김세중

TV조선 주말뉴스에 내가 잠깐 나왔다. 와서 취재는 거의 한 시간가량 해갔지만 실제 내가 말한 분량은 10초 남짓이다. 편집의 결과다. 그런데 그건 좋다. 문제는 딴 데 있었다.


기사 제목이 '조각'.'지득'.'건정'... 접근 어려운 법률용어, 개정은 험난이다. 제목부터가 마뜩지 않다. 나는 2022년에 <민법의 비문>을, 2024년에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냈다. <민법의 비문>이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역점을 두어 비판한 것은 우리나라 법조문에 비문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법조문의 법률용어가 어렵다는 게 아니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차이가 중대하다. 우리나라 법조문에 어려운 법률용어가 많은 것은 대부분 일본 법의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어렵다고 비판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없다. 법에는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법률용어가 있다. 특히 기본법인 민법, 형법 등이 그렇다. 그리고 그런 기본법에 수많은 어려운 법률용어가 있는 것은 국민을 일부러 골탕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꼭 필요하니까 있는 거다. 달리 어떻게 표현할 도리가 없기도 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다. 무엇보다도 법조인들에겐 그런 난해한 용어들이 익숙하다. 그들에겐 어렵지 않다. 일반인들에겐 한없이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법조문에 어려운 용어가 많다고 불만을 터뜨려 봐야 얻을 게 하나도 없다. 결코 바뀌지 않는다. 법조인들에겐 그런 용어들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쉬우냐 어려우냐는 상대적이다. 답이 없다. 나한텐 어렵지만 다른 사람에겐 쉬울 수 있다. 그러니 어렵다고 아무리 불평을 해봐야 어렵지 않은 사람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다. 내 입만 아플 뿐이다.


그러나 문장이 문법을 어겼느냐 어기지 않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없다. 문법을 이겼으면 어겼고 어기지 않았으면 어기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답이 같다. 그리고 법조문이라고 문법을 어길 권리가 있는 게 아니다. 아니, 법조문일수록 문법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문법은 국어의 모든 문장에 다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외가 없다. 따라서 법조문이 문법을 어겼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1950년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기본법은 비문이 부지기수다. 왜냐하면 당시 법을 만든 법률가들이 일본어에 푹 물들었고 이들의 한국어 수준은 매우 낮았다. 한국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 법조문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엉터리로 옮긴 것도 많다. "~위반하다",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 같은 조문은 그런 비문의 예다. 이런 비문에 대해서는 지금 법률가들도 틀리지 않았다고 말을 못 한다. 말을 할 수 없다. 한국어에 그런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뉴스가 시청자들에게 먹히고 충격을 주자면 이런 비문을 거론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법률용어가 어렵다고 보도했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그저 시간만 때울 뿐이지 파장을 일으키지 못한다. 물론 법률용어가 어렵다고 하면 그걸 시청자들이 이해하기는 쉽다. 시청자도 동의하니까. 그러나 법조문의 문장이 문법을 어겨 말이 안 된다고 하면 그런 보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게 두려워 늘 하는 소리처럼 '법률용어가 어렵다'고 보도했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니 제정된 지 70년 가까운 국가 기본법이 오류투성인 채 지금도 그대로인 것이다. 구태의연한 보도 태도는 달라져야 한다. 물론 이런 중요한 문제를 겨우 1~2분짜리 뉴스로 다룰 수는 없다. 깊이 있는 탐사 기획보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낡디낡은 데다 일본어 오역투성이인 우리나라 법조문이 달라지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가 엄청나게 현대화되고 선진화되었지만 법조문만은 195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때 우리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조각'·'지득'·'건정'…접근 어려운 법률용어, 개정은 험난 (tv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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