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정비가 답이다
민법의 여러 조항에서 '보류하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민법 제636조에서도 마찬가지다. 민법 제636조는 다음과 같다.
민법 제636조는 임대차에 관한 규정에 들어 있는데 임대차 기간의 약정이 있더라도 당사자 일방이나 쌍방이 그 기간 내에 해지할 권리를 가진 때에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비록 임대차 기간 약정을 했더라도 그 기간 내에 해지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법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해지할 권리를 보류한'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자.
'해지할 권리를 보류한'은 '해지할 권리를 미룬'이라는 뜻인가, '해지할 권리를 가진'이라는 뜻인가. 법의 취지는 '해지할 권리를 가진'이다. 그러나 '보류한'이 '가진'의 뜻이 될 수 있나.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일본 법과 비교해 보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해당 일본어 민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놀라우리만큼 두 나라 법조문이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차이라면 우리나라 민법에는 '保留'라 했고 일본 민법에는 '留保'라 한 것뿐이다. 왜 일본 민법에서는 '留保'라 했는데 왜 우리 민법에서는 '保留'라 했을까. 수수께끼다.
일본 국어사전에 따르면 일본어 법률용어 '留保'는 권리나 의무를 잔류(残留) 또는 보지(保持)한다는 뜻이다. '留保'라는 말에는 남긴다, 갖는다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어사전에도 '유보(留保)'는 법률용어로서 '일정한 권리나 의무 따위를 뒷날로 미루어 두거나 보존하는 일.'이라 뜻풀이되어 있다. '보존한다'라는 뜻을 밝혀 두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민법 그대로 우리 민법 제636조에서도 '留保'라고 하는 것이 나았지 미룬다는 뜻의 '保留'는 적절하지 않았다. 왜 일본 민법의 표현을 쓰지 않고 엉뚱하게 '保留'로 바꾸었는지 까닭을 알 수 없다.
민법 제636조의 '해지할 권리를 보류한'은 일반인의 감각에 맞게 하자면 '해지할 권리를 가진'이고 법률용어를 쓴다면 '해지할 권리를 유보한'이 적절하다. '보류한'은 이도 저도 아니다. 잘못이고 그저 혼란만 일으키고 있다. 민법 여기저기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보류'는 문맥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법조문은 명료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문맥에 맞지 않는 단어를 써서 읽는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일제히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