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맞춤법에서 헤어나야 한다
워낙 굵직굵직한 시사 이슈에 묻혀 '말'은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는 듯하다. 그리고 '말'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별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 듯하다. 마땅히 소리를 높여야 할 일이 있음에도 말이다. 엊그제 연합뉴스는 기사 제목에 '배춧값'을 크게 내걸었다.
이 매체는 늘 '채솟값'이라고 하니까 '배춧값'이라고 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자. '배추'와 '값'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에 사이시옷을 붙이는 게 합당한가. 왜 '배춧값', '채솟값'이라 적나. 무엇 때문에?
이런 의문 때문에 속이 답답하던 차에 오늘 연합뉴스의 다른 기사 제목을 보고 반가움과 어이없음이 함께 밀려들었다. 다음 기사를 보자.
왜 반가웠을까. 육류값, 사료값이라고 했지 육륫값, 사룟값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류+값, 사료+값은 육류값, 사료값이라 하면서 배추+값, 채소+값은 배춧값, 채솟값이라고 하는 이유는 뭔가. 육류, 사료와 배추, 채소는 뭐가 다르길래 육류값, 사료값이라 하면서 배춧값, 사룟값이라 하나. 이 물음에 연합뉴스는 뭐라 답할지 무척 궁금하다.
사이시옷이 무슨 대단한 신주단지인 양 아무데나 마구 붙이는 경향이 있다. 붙이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말이다. 왜 그럴까. 근본 원인은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날 때 앞말 받침에 사이시옷을 붙이도록 한 한글 맞춤법 제30항이다. 이 조항에 혹해서 사이시옷을 아무데나 마구 붙이는 경향이 생겨났고 배춧값, 채솟값도 그 영향이다.
국어사전에는 식물 분류의 과 이름에 죄다 사이시옷을 붙여 놓았다.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참나뭇과, 고양잇과, 갯과, 솟과... 그러나 어느 식물원엘 가도 식물에 단 명찰에 소나뭇과, 은행나뭇과, 참나뭇과라 써 놓은 걸 보지 못했다. 소나무과, 은행나무과, 참나무과라 적어 놓았다. 국어사전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근본 원인인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삭제하는 게 타당하다.
사실 배춧값, 채솟값은 한글 맞춤법 제30항 사이시옷 규정의 적용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에 따르면 사이시옷은 합성어, 즉 단어에 붙이게 돼 있는데 배춧값, 채솟값은 배추 값, 채소 값, 즉 두 단어지 한 단어가 아니다. 즉 합성어가 아니다. 언론 기사에서 배춧값, 채솟값을 보지 않아도 될 날은 언제 올지 궁금하다. 그런 건 지금 즉시 그만둬야 한다. 잘못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