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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중 Nov 09. 2024

가을 광교산

이번 가을에 단풍 한번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이럴 수는 없다 싶어 내장산이나 주왕산은 못 가더라도 멀지 않은 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광교산이다. 한 달 전에 가족과 함께 바라산을 오른 적이 있는데 그 부근을 다시 찾는다. 백운호수 부근 바라산맑은숲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계곡을 따라 산길을 오르는데 이미 낙엽은 거의 다 졌다. 그리고 바라산은 단풍도 별로 볼 수가 없다. 단풍나무는 물론 눈에 띄지 않는다. 터덜터덜 오르고 있는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하면서 걷다 보니 오르막이 힘든 줄을 모르겠다. 어느새 고분재에 올랐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바라산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백운산, 광교산 방향이다. 오른쪽으로 접어들었다.


백운산은 전망대도 있고 벤치도 여기저기 있어 쉬기 좋다. 하늘의 희뿌예서 경치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오진 않았다. 백운산에서 잠시 쉰 뒤 다시 광교산 방향으로 걸음을 이어갔다. 군부대를 지나 억새밭에 이르렀다. 억새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많았나 보다. 여기에 갈림길이 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냥 직진이다.


광교산 부근에서 계단이 길게 이어졌다. 역시 높은 곳엔 쉽게 이를 수 없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시루봉광교산 정상석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참 많이도 모여 있다.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니 시루봉이 붐비는 건 당연하다. 백운산은 의왕 백운호수쪽만 보이지만 광교산은 다르다. 거의 사방이 다 트였다.


광교산 정상에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눈에 띄는 가족이 있었다. 30대로 보이는 부부가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들과 산에 올라왔나 보다. 엄마는 백인 여성이었고 아빠는 한국사람이었다. 세 사람의 대화는 한국어로 이뤄지고 있었다. 백인 엄마의 한국어는 능숙해 보였다. 아들은 엄마 영향을 받아 한국 아이와 외모가 약간 달라 보였지만 말은 자연스러운 한국어를 했다. 그런데 이 가족을 얼마 후 형제봉 부근 등산로에서 마주쳤다. 나와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흥미로운 대화여서 귀가 솔깃했다.


아마 아들이 아기는 어떻게 해서 태어나는지를 물은 모양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만나서..."라고 했다. 아이가 바로 질문했다. "정자가 뭐야? 공원에 있는 쉼터 같은 거?" 그러자 아빠는 "그게 아니고 아빠 몸에 있는 올챙이 같은..." 하고 설명을 했다. 마주치다 들은 대화였으므로 더 이상은 부자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아들이 아는 정자는 정자(亭子)였는데 아빠는 정자(精子)를 말하고 있었다. 아빠는 아마 아들이 정자(精子)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보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못 알아듣자 올챙이 운운 했는데 그걸 또 아들이 이해했을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런 의문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부모가 설명하는 방식도 제각기 다를 것이고 의문을 푸는 시기도 각기 다를 게다. 부자간의 진지한 대화를 더 들어보지 못해 아쉬웠다.


광교산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동천동이지만 남쪽으로 향했다. 역시 그쪽이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등산로도 널찍하다. 도중에 광교저수지쪽 가는 갈림길에서 광교저수지가 아닌 성복동 버들치고개쪽으로 길을 택하니 갑자기 산이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날씨도 시시각각 어두워지는데 깊은 산속에 나 혼자라는 느낌이다. 버들치고개에 이르렀을 땐 거의 캄캄한 지경이었다. 원래는 조광조선생 묘로 내려올 생각이었는데 계획을 접었다. 캄캄한데 산길에서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없다. 버들치마을 경남아너스빌 부근 버스 정류장에서 성복역 가는 마을버스에 올랐다. 13.5km를 걸었고 7시간 50분이나 지나 있었다. 느림보가 따로 없다. 그러나 부상 없이 산행 마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비록 단풍에 취할 일은 없었지만 가을의 정취는 듬뿍 느낄 수 있었다. 곳곳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원 없이 낙엽도 밟아 보았다. 늘 북쪽의 바라산 주변만 누비고 다니다가 모처럼 남쪽으로 높은 봉우리들을 밟아 보았다. 백운산과 광교산을 다 지났으니까. 오늘 산행은 종주에 가까운 코스였는데 곳곳에 갈래길이 있었다. 다음엔 신봉동이나 성복동으로 내려오는 지맥도 걸어보고 싶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날에 광교백운산을 길게 걸으며 광교산의 가을을 충분히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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