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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의 추억

세상은 천지개벽이 되었는데

by 김세중

'살인의 추억'이란 영화가 있었다. 20년도 넘었다. 이를 모방해 '계엄의 추억'이란 제목으로 짤막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지난 세월 내가 겪은 계엄은 두 차례다. 1972년 10월의 계엄과 1980년 5월의 계엄이다. 물론 1964년 6월에도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1972년 10월 이른바 10월유신으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당시 비상계엄은 너무나 급작스러운 것이었고 헌법적 근거도 없었다. 헌법에 국회를 해산할 권한이 대통령에게 없었음에도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마련한 새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킨 뒤 새 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다.


1980년 5월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그 전해 10월에 선포된 계엄의 전국 확대 형식이었다. 전해에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로 선포된 계엄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대해서였는데 이때 제주도도 포함시키면서 포고령의 내용도 확 달라졌다.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회를 해산했다. 그런데 이때의 국회 해산은 헌법에 근거가 있었다. 1972년에 새로 공포된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회를 해산할 권한을 부여했고 따라서 1980년 5월의 비상계엄 확대에 따른 포고령에서 국회를 해산한 것은 헌법적 근거가 있었다.


2024년 12월의 계엄은 어땠나. 포고령에 국회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했다. 1980년 계엄 포고령과 흡사하다. 다만 국회를 해산하려고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비상입법기구 설치' 운운하는 말이 보도되기는 하지만 당사자들이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는 모양이어서 알 길이 없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실은 딴 데 있다. 1972년, 1980년, 2024년 계엄 포고령의 공통점은 정치활동만 금한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언론, 출판을 통제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1972년과 1980년 포고령에서는 '사전검열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2024년 포고령에서는 그냥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해서 표현이 살짝 다를 뿐이다.


그리고 1972년, 1980년 계엄 때는 실제로 언론이 사전검열을 받았다. 서울의 경우 시울시청에 계엄사 직원이 사무실을 차리고 있었고 언론사에서는 기사를 들고 와 계엄사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언론사가 몇 되지 않았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방송사는 수가 더욱 적었다. 종편이란 것은 물론 있지도 않았다. 유튜브니 SNS는 꿈에도 상상 못할 일이었다. 그러니 계엄사가 언론에 대해 사전검열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2024년은 어떤가. 인터넷신문이 2만 개를 넘는다고 한다. 개인 유튜브채널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상이 천지개벽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계엄 포고령의 내용은 40년, 50년 전의 포고령과 다르지 않으니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c1.png 1972. 10. 17.



c2.png 1980. 5. 17.



c3.png 2024.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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