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뜻이 있다
오늘 이른바 레거시미디어라 할 중앙일보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국보위는 1980년 10월 27일 만들어 시행한 5공화국 헌법의 부칙에 따라 기존 국회를 대체해 설치된 임시 입법기구라는 것이었다.
이 기사를 읽고 필자는 적이 당황했다. 국보위가 1980년 10월 27일 만든 5공화국 헌법에 따라 설치된 임시 입법기구라고? 5공화국 헌법이 1980년 10월 27일 공포된 건 맞다. 그런데 국보위가 5공화국 헌법에 따라 설치되었다고?
필자가 기억하는 국보위는 이미 1980년 5월 31일에 발족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제압하고 전면에 나타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돼 국보위 현판식에서 현판을 걸던 사진이 기억에 선명한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나? 자세히 내막을 알아보니 그제야 이해가 됐다. 1980년 한 해 동안 국보위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1980년 5월 31일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발족했다. 이를 보도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6월 5일에는 현판식이 열렸다.
1980년 5.18 계엄 확대로 국회의 활동이 마비됐다. 계엄사가 포고령을 발령해 정치활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묶였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막았을 뿐 당시 제10대 국회를 해산하지는 않았다. 국회가 있기는 있되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국회의 권한을 대신할 기구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였다. 그런데 실제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얼마나 입법 활동을 했는지는 필자는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한다.
1980년 9월 27일 보도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온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국가보위대책회의로 명칭을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신문에는 국보위를 국가보위입법회의로 한다고 국무회의가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실제로 이후에 마련되어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개헌안에는 부칙에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명시되었다. 그리고 이 개헌안(제5공화국 헌법)은 1980년 10월 22일에 국민투표에 부쳐졌고 유권자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뒤 1980년 10월 27일에 공포되었다. 이 제5공화국 헌법 부칙 제6조에 명시된 국가보위입법회의는 그 제1항 "이 헌법에 의한 국회의 최초의 집회일 전일까지 존속하며, 이 헌법시행일로부터 이 헌법에 의한 국회의 최초의 집회일 전일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한다."에 따라 1981년 4월 10일까지 존속했다.
정리해 보자. 국보위는 1980년 한 해 동안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국가보위대책회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약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모두가 국보위였다. 그러니 국보위라고 할 때 어떤 국보위를 가리키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의사소통에 오해가 없다.
필자처럼 젊은 시절 국보위를 겪었던 사람에겐 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국보위가 의미 있을 턱이 없다.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지 비상입법 기구가 운위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비상입법 기구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실은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