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
사람은 살아가면서 채권을 갖기도 하고 남에게 채무를 지기도 한다. 그리고 채무가 있다면 이행해야 한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민법은 이를 규정하고 있다. 제390조가 그것이다.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38 자인 이 문장이 바로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굳이 법조문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내용이다. 채무를 채무의 내용대로 이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이라는 표현이 어떤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이 말이 정상적인 한국어 표현이라고 생각되는가. 필자로서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 인공지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공지능에 물어보기로 했다.
클로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챗gpt는 이렇게 답했다.
퍼플렉시티는 이렇게 답했다.
제미나이는 이렇게 답했다.
유는 이렇게 답했다.
코파일럿은 이렇게 답했다.
딥시크는 이렇게 답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 cue:는 이렇게 답했다.
CUE:
네, 해당 문장은 대한민국 민법 제390조에 명시된 내용으로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입니다.
민법 제390조는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을 하지 않은 경우, 채권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채무자가 채무를 불이행했을 때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채무자가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에 한하여 성립합니다.
한국의 네이버는 물론이고 외국의 모든 인공지능이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문장이라고 했다. 필자로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좇다'라는 한국어 동사는 목적어에 조사 '을/를'이 와야 하는데 '채무의 내용을 좇은 이행'이 아니라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인데도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어떤 인공지능도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라는 문장을 틀렸다고 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정상적이고 문법적인 문장이라고 했다. 다만 일부 인공지능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 좀 켕겼던 모양인지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이 더 자연스럽고 명확하다고 했다. 대표적인 게 챗gpt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이구동성으로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가 정상적인 한국어 문장이라 해도 이 문장은 정상적 한국어 문장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국어사전이 이를 가리키고 있지 않은가.
법조문의 권위에 눌려 인공지능이 한결같이 민법 제390조의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를 정상적이고 문법적인 문장이라고 했지만 법조문도 오류가 있다. 민법 제390조 문장은 틀린 문장이지 정상적이고 문법적인 문장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그 조문을 몸에 익혔을 관록 있는 법조인들에겐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에겐 몹시 거북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괴이한 표현을 자라나는 세대에게까지 물려줄 것인가.
법조인은 물론 인공지능마저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이에 맞서 문법에 맞게 문장을 바로잡고자 하는 필자 같은 이의 분투가 쉽게 결과를 얻지는 못할 것임을 새삼 절감한다. 관습의 벽이 대단히 높다. 그러나 못 넘을 것은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