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에 물어보다
물권 중에 지역권이라는 게 있다. 타인의 토지를 자기 토지의 편익을 위해 이용할 권리가 지역권이다. 내 집에서 도로로 나가자면 옆집 밭을 지나야 한다면 나는 옆집 밭에 대한 지역권을 갖는다. 물론 옆집과 계약을 해야 할 것이다. 이때 내 집이 요역지이고 옆집 밭은 승역지라 한다. 민법 제292조 제1항은 지역권은 요역지 소유권에 부종하여 이전한다고 돼 있다('이전된다'가 정확하다). '부종하여'는 '따라'라는 뜻으로 소유권이 이전되면 지역권도 거기에 따라간다는 것이다. A가 B의 토지에 지역권을 갖고 있었는데 B가 C에게 토지를 팔았다 해도 A는 C에게 그 지역권을 여전히 갖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민법 제292조 제1항은 "...... 이전하며 또는 요역지에 대한 소유권이외의 권리의 목적이 된다."라 돼 있다. 여기서 '요역지에 대한 소유권 이외의 권리의 목적이 된다'는 게 무슨 말인가. 소유권 이외의 권리란 전세권, 임차권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전세권, 임차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더라도 이에 붙어 있는 지역권도 또한 넘어간다는 뜻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또는'은 뭔가.
'또는'은 국어사전에 간단히 '그렇지 않으면'이라고만 돼 있다. 다음과 같다.
요컨대 '또는'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란 뜻이다. 'A 또는 B'라면 A와 B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는'을 사람들은 선택의 뜻으로 쓰고 있는데 민법 제292조 제1항에서는 그게 아닌 듯이 보인다. 'A와 B'를 뜻하면서 'A 또는 B'라고 쓴 듯이 보인다.
이에 대해 인공지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덟 가지 인공지능에 물어보았다. 5 대 3으로 갈렸다. 5는 민법 제292조 제1항에서 '또는'이 적절치 않다고 했고 3은 문제없다고 답했다. 먼저 '또는'이 적절치 않으며 '그리고'가 적절하다고 답한 인공지능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 코파일럿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그 질문이 아주 날카롭네요!" 하고 마치 사람이 말하듯이 답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상의 답변들과 달리 '또는'의 사용이 문제없다고 답한 인공지능도 있었다. 다음과 같다.
제미나이와 딥시크는 '또는'이 둘 다를 포함하는 경우도 나타낸다고 했다. 클로바x의 답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다. 덮어 놓고 '또는'은 적절하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단순히 5 대 3으로 5가 다수라서가 아니라 '또는'은 A와 B 중 어느 하나를 뜻한다는 점에서 민법 제292조 제1항에서 '또는'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또는'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이를 방증하는 것이 있다. 2019년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민법개정안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또는'이 빠졌다.
비록 이 개정안이 제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아 아쉽지만 법률가들도 민법 제292조 제1항의 문장이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는 것 아닌가. 법조문은 명확해야 한다. '이게 무슨 뜻이지?' 하는 의문을 낳아서는 안 된다. 민법 제292조 제1항은 뜻이 명료하게 드러나도록 바로잡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