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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은 허당인가

사용자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by 김세중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로 허당이 있다. 뭐 좀 꽤 잘할 것 같아 보였는데 알고 보니 실속이 없고 기대 밖으로 형편없을 때 허당이라고 한다. "그 사람 허당이야."처럼 말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허당이 없다. 아니, 있기는 있는데 방언이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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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탕의 방언, 허방의 방언이란다. 허탕은 '어떤 일을 시도하였다가 아무 소득이 없이 일을 끝냄. 또는 그렇게 끝낸 일'이라 뜻풀이되어 있는데 허당이 그런 뜻인가. 아니지 않나. 또 허방은 '땅바닥이 움푹 패어 빠지기 쉬운 구덩이.'라는데 허당과는 상관이 없지 않나. 허당허탕, 허방과 의미상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허당허탕, 허방과는 이미 다른 말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방언도 아니다. 전국적으로 널리 쓰인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 올라야 마땅하다. 이런 것을 보면 허당을 올리지 않은 국어사전이야말로 허당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에 구독이란 말이 부쩍 확장되어 쓰인다. 구독경제라는 말도 있다. 구독이 신문이나 잡지처럼 읽는 것만 받아보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배달받는 것은 다 구독이라 한다. 호텔업계에서 김치 구독 서비스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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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먹는 것이지 읽는 게 아니다. 그러나 구독이라 한다. 우유, 요구르트 등도 구독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어사전은 구독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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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뜻이 1이었는데 2로 확대해서 쓰이는 것까지는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유, 요구르트, 빵 심지어 김치까지 구독한다는데 국어사전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사전에 따라 말을 하지 않는다. 사전에 없지만 말의 뜻을 확장하기도 하고 사전에 없는 말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그럼 사전이 이를 반영하여야 한다. 사전이 언어 실태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사전은 대체 왜 존재하는가. 물론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다고 그때마다 바로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널리 퍼져서 굳어졌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꽤나 보편화되었다고 판단된다면 즉각 사전에 반영해야 옳다. 더구나 사전에 '구독경제'는 올렸으면서 '구독'의 뜻은 여전히 '읽는' 것에만 한정하고 있음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구독경제'를 사전에 올렸으면 '구독'의 뜻에 '정기적으로 물품을 구매하는 것'을 추가해야 마땅하다. 국어사전이 허당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사전 편찬자들은 언어 실태를 예의 주시하고 필요한 갱신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언중의 기대에 부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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