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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문을 달달 외우고

이런 법조문은 언제, 누가 고치나

by 김세중

오늘 한 신문에 어느 대학교수가 쓴 칼럼이 실렸다. 칼럼의 제목은 '법조 엘리트의 재생산 구조'였다. 특정 배경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뭉쳐 공고히 국가 핵심 요직을 차지하고 전횡을 일삼는다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칼럼의 주장에 동의하는지 여부는 별개로 하고 칼럼 속의 한 구절이 필자의 눈에 번쩍 띄었다.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 경쟁률 높은 시험을 통과하고'에 들어 있는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씁쓸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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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서야 경쟁률 높은 시험을 통과해 검사도 되고 판사도 되었을 것이다. 사법시험 말이다. 2017년 제59회를 끝으로 사법시험은 폐지되었지만 지금 법원, 검찰의 간부들은 모두 이 사법시험을 통과했을 것이다. 그들이 법조문을 달달 외우지 않고 사법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칼럼의 "법조문을 달달 외우고 경쟁률 높은 시험을 통과하고"라는 대목은 누구도 틀렸다고 부정할 수 없다 하겠다. 이는 물론 로스쿨을 거쳐 판, 검사, 변호사가 된 이들도 매한가지다. 로스쿨에서 공부하며 법조문을 달달 외우지 않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요컨대 법조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도 법조문을 달달 외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필자가 던지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민법 제77조 제2항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


이 문장이 말이 되나? 동사 '되거나'가 왔으면 뒤에도 동사가 와야 하는데 동사가 없다. 이런 문장을 비문이라 한다.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법조문이다. 다음은 또 어떤가.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이 문장은 말이 되나?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소멸시효가 뭘 완성한다는 말인가. 완성고 해야 할 것을 완성고 했다. 비문이다. 말이 안 된다. 다음은 어떤가.


민법 제195조

가사상, 영업상 기타 유사한 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지시를 받어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하는 때에는 그 타인만을 점유자로 한다.


지시를 받어라고 했다. 아예 오자다. 받아가 맞지 않나. 오자를 왜 방치하고 있나.


이런 터무니없는 오류가 들어 있는 법조문을 달달 외워 법조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법조인들은 도대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틀린 것을 바로잡을 생각을 않고 달달 외운다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물론 공부하는 학생일 때야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지상 과제이니 달달 외울 수밖에 없다 쳐도 합격 후에 법조인이 되어서는 틀린 것을 바로잡으려 해야 마땅하지 않나. 민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벌써 68년이 지났지만 이런 오류는 68년째 요지부동 그대로 있다. 위 예들뿐 아니다. 별의별 숱한 오류가 민법을 비롯해서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 국가 기본법에 들어 있다. 법조인들이 과연 정의감이 있는 사람들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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