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소리도 국어의 소중한 한 부분
신도림역은 서울의 수많은 지하철역 중에서도 혼잡하기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출퇴근 시간에 인파가 엄청나다. 우측통행을 지키지 않고 거슬러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다. 온통 내려오는 사람뿐인데 거슬러 올라가려니 올라가는 사람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사람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부딪치기 때문이다. 어떤 아낙네가 소리쳤다. "왜 꺼꿀로 올라오구 그래!" 화가 날법도 하다.
꺼꿀로라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꺼꿀로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인데 국어사전에는 과연 있을까. 스마트폰에서 사전을 켜보니 꺼꿀로는 없었다. 흔히 쓰지만 사전에는 안 오른 말이 어디 한둘인가. 있으리라고 아예 기대도 안 했다. 정작 궁금한 것은 꺼꾸로는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꺼꾸로도 국어사전에 없었다. 아니, 있긴 있되 잘못된 말이니 거꾸로를 쓰라고 돼 있었다. 꺼꾸로는 왜 쓰면 안 되고 거꾸로를 써야 할까. 의문이 일었고 살짝 부아까지 났다. 꺼꾸로가 잘못된 말이면 꺼꿀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꺼꾸로는 거꾸로를 쓰라고 안내라도 되어 있었지 과연 꺼꿀로는 아예 그런 표시조차 국어사전에 없었다. 언급할 가치조차 필요없는, 아주 잘못된 말로 간주했으리라.
꺼꿀로는 쓰이긴 쓰여도 그리 보편적으로 쓰이는 말은 아니니 사전에 안 오른 걸 이해할 수 있다. 쓰인다고 온갖 말을 다 올릴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꺼꾸로다. 꺼꾸로는 소수 사람들만 쓰는 말이 아니다. 세상에 두루 널리 쓰이는 말이다. 아니, 거꾸로보다는 꺼꾸로가 오히려 더 널리 쓰이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꺼꾸로는 쓰지 말고 거꾸로를 쓰라고? 누가 무슨 근거로 꺼꾸로를 써서는 안 된다고 하나? 꺼꾸로를 써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게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다음을 보자.
같은 사전에 가꾸로가 있고 까꾸로가 있다. 까꾸로는 ‘가꾸로’보다 센 느낌을 준다고 뜻풀이해 놓았다.
까꾸로는 가꾸로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이라면서 꺼꾸로는 왜 거꾸로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이 아니고 아예 잘못된 말이라 하나. 꺼꾸로가 잘못된 말이면 까꾸로도 잘못된 말이어야 하지 않나. 까꾸로가 가꾸로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이듯이 꺼꾸로도 거꾸로보다 센 느낌을 주는 말이다. 잘못된 말, 틀린 말이 아니다.
일전에 친구들과 저녁에 분당중앙공원에 오른 적이 있다. 정상 부근에 운동기구들이 참 많다. 별별 운동기구가 다 있다. 한 친구가 꺼꾸리를 찾았다. 그게 하고 싶다고 했다. 꺼꾸리?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고 운동기구였다. 가서 보니 몸을 눕히고 각도를 조절하면 머리가 땅에 닿을 듯하고 발이 하늘로 치솟는 운동기구였다. 사람은 늘 머리가 위에 있고 발이 땋에 있다. 잘 때만 평평하게 유지한다. 그런데 이 기구를 이용하면 반대가 된다. 머리가 아래에, 발이 위에 있다. 그래서 꺼꾸리였다.
꺼꾸리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다. 거꾸리도 없다. 겨우 우리말샘에 거꾸리가 있을 뿐이다. 된소리에 대한 부당한 배척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일관성도 없다. 까꾸로는 가꾸로보다 센 말이라면서 꺼꾸로는 써서는 안 되고 거꾸로를 쓰라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습지 않은가. 바로잡을 때가 됐다. 된소리도 소중한 국어의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