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은 아무 관계가 없다
어제 모처럼 젊은이들과 같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영민한 신예 변호사였다.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가 나이에 미쳤다. 나이 계산을 어떻게 하는가를 놓고 잠시 얘기가 오갔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변호사가 한 말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다시 집에서 세는 나이, 즉 집 나이를 많이 쓰는 것 같다고. 그게 신기하다고 했다.
온 국민이 다 알듯이 2023년 6월부터 개정된 민법이 시행됐다. 2년이 가까워 온다. 개정된 민법에 따르면 나이 계산은 만 나이로 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다.
그런데 개정되기 전의 조문은 어땠나. 다음과 같았다. 1958년부터 이랬다.
지혜로운 사람은 금세 간파하겠지만 우리나리 민법은 원래부터 나이 계산은 만 나이로 하라고 돼 있었다. 다만 제158조 조문에 만 나이라는 말이 안 들어 있었을 뿐이다. 출생일을 산입한다는 것이 바로 만 나이로 계산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만 나이라는 말이 안 들어 있고 출생일을 산입한다고만 돼 있으니 법을 개정하는 난리를 쳤지만 1958년 신민법을 제정할 때 당시 법률가들은 이미 나이 계산은 만 나이로 하라고 했던 것이다.
2022년 민법 개정은 한마디로 헛다리를 짚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사적인 대화를 할 때 집 나이를 써온 것은 민법에 따른 게 전혀 아니었다. 민법이 없었던 수백, 수천 년 전부터 그렇게 해 왔다. 따라서 사적인 대화를 할 때 집 나이를 쓰지 않고 만 나이를 쓰도록 하기 위해 민법을 개정한 것은 번지 수를 단단히 잘못 짚은 것이다. 민법 자체가 이미 1958년부터 만 나이를 쓰라고 돼 있지 않았나. 조문에 만 나이라는 말이 안 들어 있다고 그 조문의 뜻이 만 나이를 쓰라는 것이 아니었나. 집 나이를 쓰라는 것이었나.
이런 사정을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도 변호사는 익히 알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2023년 6월 29일부터 개정된 민법이 시행됐는데 초기에는 사람들이 만 나이를 곧잘 쓰는 것 같았는데 2년 가까이 지난 요즘 들어서는 만 나이를 잘 안 쓰고 다시 집 나이를 많이 쓰는 것 같다는 그의 말에 필자는 당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 나이는 민법과 아무 상관 없이 수백 년 전부터 우리 겨레가 당연시해오던 것이다. 그게 민법 바뀌었다고 (실은 바뀐 것도 아니지만) 달라지나.
앞으로도 집 나이와 만 나이는 오래도록 섞여 쓰일 것이다. 나이를 말할 때 집 나이로 말한 건지 만 나이로 말한 건지를 늘 확인해야 의사소통의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 습속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요한다. 집 나이를 말하는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아마 앞으로 100년은 걸리지 않을까 싶다. 2022년 민법 개정은 우리나라 법제사의 흑역사라 생각한다. 우스꽝스러운 소극 같은.
나이 계산을 만 나이로 통일하는 것은 2022년 한 대선 후보의 공약집에 들어 있었다. “법령상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여 국민의 혼란과 불편을 줄이겠습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 후보가 당선 후 1년도 안 돼 민법이 개정됐다. 야당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던 모양인지 반대가 한 표도 없이 2022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 공격에 시종 앞장섰던 한 원로 야당 의원은 대통령이 딱 하나 잘 한 업적이 있는데 온 국민의 나이를 한두 살 젊게 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여야 모두 머리에 뭐가 씌었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