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이 틀렸다는 지적을 한 인공지능은 없었다
어제 친한 벗이 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카톡으로 보내줬는데 법조문의 국어 표현을 지적한 내용이었다. 그 강의에서 예시로 든 조문 중 하나가 민법 제460조의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였다. 강의자는 맞춤법이 틀렸다고 했지만 문법이 틀렸지 맞춤법이 틀린 것은 없다. 이 오래된 민법의 문장을 인공지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먼저 챗gpt에 물어보니 1초도 안 돼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내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온갖 환각(hallucination)으로 나를 어이없게 만들곤 했던 인공지능이 한편으로 이런 날카롭고 속시원한 대답을 그것도 번개처럼 내놓다니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번엔 코파일럿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이랬다.
챗gpt에 비해 살짝 답도 느렸지만 문제는 답변 내용이었다. 챗gpt의 답변에 경탄을 했지만 코파일럿은 뜨뜨미지근하다. 법률 문장의 특성상 정확한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법률 문장으로서의 엄밀성을 고려하면 굳이 수정할 필요는 없단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위 문장이 정확한 개념을 전달한다고 보나? 엄밀한가? 더욱 문제인 것은 문장 자체의 문법적 오류가 없다는 말이었다. 왜 문법적 오류가 없나. '좇은'은 타동사이기 때문에 '채무내용을 좇은'이라고 해야 문법적이지 않은가. 코파일럿에 살짝 실망했다.
이번에는 제미나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렇게 답했다.
다시 챗gpt와 유사한 답이 나왔다. 안도했다. 이번에는 퍼플렉시티에 물어보았다.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역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번에는 국내산 인공지능에 물어보기로 했다. 먼저 에이닷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나왔다.
역시 챗gpt,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등과 대동소이했다. 이번에는 뤼튼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답을 내놓았다.
답은 앞의 인공지능들과 대동소이했지만 문법적으로 틀린 건 전혀 없다고 단언한 것은 좀 특이했다. '채무내용에 좇은'이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조사를 잘못 썼는데도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나? 이번에는 oo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답을 했다.
비교적 무난한 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oo 역시 '현실내용에 좇은'이 조사를 잘못 써서 문법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지적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Solar에게 물었다. 이렇게 답했다.
다른 인공지능과 살짝 다르다. 물품을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채무는 반드시 물품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닌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클로바에게 물었다. 이런 답을 내놓았다.
클로바는 매우 간명하게 답변했다. 대안도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제공해야'는 목적어를 요구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가 없으니 대안도 완벽하다 볼 수 없다. 문법적으로 여전히 문제가 있다.
이상에서 주요 인공지능들의 민법 제460조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에 대한 평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법률 조문으로서는 적절하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난해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민법 제460조의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는 일본 민법 조문과 거의 판박이라는 사실이다.
일본 민법에 있는 本旨를 내용으로 바꾸었을 뿐 일본 민법의 從을 좇은이라 했다. 좇은을 썼으면 채무내용을 좇은이라 해야 했지만 채무내용에 좇은이라 했다. 일본 민법에서 本旨に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인공지능이 따른이라 하지 않고 좇은을 쓴 것을 지적했지만 좇은을 쓴 게 잘못은 아니다. 따른을 쓰는 게 물론 더 좋다. 그러나 좇은을 쓴 이상 그 앞 명사에 조사는 을을 썼어야 했다. 그러지 않고 에를 썼다. 그래서 문법이 틀렸다. 이를 지적한 인공지능은 하나도 없었다. 인공지능이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를 그대로 둘 것인가. '채무내용에 좇은"은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