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틀린 문장은 고쳐져야 한다
친한 벗이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자기가 지금 받고 있는 교육에서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내용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카톡에 든 사진을 보고 놀랐다. 틀린 맞춤법의 예시로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무슨 교육을 받고 있는지 모르니 어떤 과목에서 누가 강의를 하면서 이런 내용을 넣었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그리고 이런 강의를 통해서 강사가 수강생에게 무엇을 불어넣어 주려고 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다만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왜냐하면 맞춤법이란 말을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지 해서다.
대체 무슨 교육이길래 강의자는 교육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켰을까.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와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에는 과연 맞춤법이 틀린 게 있는가. 뭐가 맞춤법이 틀렸을까.
짚이는 데는 있다.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에서는 '좇은'이 아니라 '따른'이어야 하고,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에서는 '완성한다'가 아니라 '완성된다'라야 함을 지적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따른'을 써야 할 것을 '좇은'이라 쓴 것이 맞춤법이 틀렸고, '완성된다'라 써야 할 것을 '완성한다'라 쓴 것이 맞춤법이 틀린 걸까.
여기서 보통 사람들이 맞춤법이라는 말을 별로 생각 없이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이 이상하면 다 맞춤법이 틀린 걸로 아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러나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가 이상한 말인 이유는 '채무내용에 좇은'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채무내용에 따른'이나 '채무내용을 좇은'이면 말이 되지만 '채무내용에 좇은'은 말이 안 된다. '좇다'는 타동사여서 목적어가 있어야 하고 목적어에는 조사 '을/를'이 붙어야 하는데 '채무내용에 좇은'이라고 했기 때문에 문법을 어겼다. 맞춤법이 틀린 것은 없다.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도 마찬가지다.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는 말이 되지만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는 말이 안 된다. 문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완성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가 없음에도 타동사를 썼기 때문에 문법을 어겼다. 자동사인 '완성되다'를 썼어야 했다.
요컨대 "변제는 채무내용에 좇은 현실제공으로 이를 하여야 한다"와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에서 맞춤법이 틀린 데는 하나도 없다. 모두 문법이 틀렸다. 문법이 틀리면 문장이 말이 안 된다. 이에 반해 맞춤법이 틀린 것은 문장과는 상관이 없다. 맞춤법은 문장의 문제가 아니라 단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일 '똑바로'를 '똑빠로'라고 썼다면 맞춤법이 틀린 거다. 문장과는 상관이 없다. '똑바로'는 어떤 문장에 쓰이든 맞춤법에 맞게 쓴 것이고 '똑빠로'는 어떤 문장에 쓰이든 맞춤법에 틀리게 쓴 거다.
이렇게 맞춤법과 문법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구분지만 이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사례를 간혹 본다. 지우가 받고 있는 교육의 강사도 문법이라 해야 하는데 맞춤법이라 했다. 단어는 개념이다. 개념을 분명히 해야 뜻이 제대로 전달된다. 강사의 강의를 듣고 수강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강의의 효과는 있었을까. 강의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전달, 주입하고자 함이었을까. 그 목표를 달성했을까. 이런 강의가 필요 없게끔 법의 틀린 문장이 고쳐져야 하는데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들은 이런 문제에 도통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