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바로 세워야
새 정부가 탄생했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따라 대선이 치러지게 됐고 오늘 새 정부가 출범했다. 기대하는 바가 크다. 지난 정부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도무지 무엇 하나 똑 부러지게 되는 일이 없었다. 결국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파산했다. 새 정부는 다르다. 압도적 국회 의석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필자는 2022년에 <민법의 비문>을, 2024년에는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써서 우리나라 주요 법의 문장이 너무나 허점투성이임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지만 정부나 국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일어나지 않았다. 법조계는 관성에 젖어 개선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도 한결같이 외면했다.
말은 사회적 약속이고 말에는 문법이 들어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는 문법을 지켜서 한다. 법조문도 말이고 당연히 문법을 지켜야 하는데 우리나라 주요 법의 법조문은 문법을 어긴 예가 수도 없이 많다. 그 사례들이 앞에서 든 두 권의 책에 고스란히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몇 예만 들어보자. 모두 민법에 있는 예들이다.
'신의에 좇아', '채무내용에 좇은' 같은 말은 이 표현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좇다'라는 말부터가 요즘 잘 쓰이지 않는 말이지만 쓰더라도 '명예를 좇다', '권력을 좇다', '부귀영화를 좇다'처럼 목적어가 있어야 한다. 목적어라면 의당 목적격 조사 '을/를'이 와야 한다. 그런데 '신의에 좇아', '채무내용에 좇은'에는 목적어에 해당하는 말에 엉뚱하게 조사 '에'가 붙어 있다. 문법을 어겼다. 문법을 어겼으니 말이 안 된다. 이런 오류는 일본어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잘못 번역한 데서 비롯되었다. 광복된 지 올해로 80년인데 아직 일본어 찌꺼기가 한국어 법조문에 침투해 있다. 그래서 국민이 법조문을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다음은 또 어떤가.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했다. 소멸시효가 무엇을 완성한단 말인가. '소멸시효가 완성된다'라고 해야 할 것을 엉뚱하게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했다. 문법에 어긋나는 틀린 문장이다.
심지어 법에는 철자가 틀린 예도 있다. '지시를 받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지시를 받아'라 해야 맞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것이다. 그런데 법조문에 버젓이 남아 있다.
부끄러워서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런데도 법조계, 법학계에서는 태연하고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들은 무관심하다. 이번 정부는 유난히 국민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있을 정식 대통령 취임식도 임명식이라고 한단다. 국민이 대통령을 임명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새 정부의 의지를 믿고 싶다. 말이 안 되는 법조문은 국민이 법을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당연히 시정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라면 할 수 있다. 70년 묵은 오랜 때를 벗겨내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