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말에 무관심한 국민일까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다. 주어 없는 문장이 없고 서술어 없는 문장이 없다.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해야 문장이 성립한다. 문장이 성립해야 뜻이 전달된다.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데 뜻이 제대로 드러날 리 없다. 그런 점에서 민법 제162조 조문은 문장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반면교사이다. 민법 제162조 제1항은 다음과 같다.
주어가 채권은인데 주어에 호응하는 서술어의 동사는 완성한다이다. 완성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말인데 채권이 무엇을 완성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목적어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채권은과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는 호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장이 성립하지 않는다. 문장이 성립하지 않으니 뜻이 선명하게 드러날 리 없다. 완성한다가 아니라 완성된다라야 한다. 그런데 이런 엉터리 문장이 법률로 공포된 지 67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대로다. 참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오늘 아침 단톡방에서 아주 감동적인 글을 읽었다. 얼마 전 유로파리그에서 토트넘이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했는데 경기가 끝나고 토트넘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패장인 맨유 주장 브루노 페르난데스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손흥민 선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손 선수가 그저 골만 많이 넣는 선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되찾도록 돕는 훌륭한 선수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단톡방에 글을 올린 사람이 글 끝에다 아래와 같이 썼다. 자신이 퍼다 나른 글을 쓴 사람이 누군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문장을 읽으며 참으로 허탈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어가 위 글은인데 이와 호응하는 말은 00고 1년 후배이자 절친입니다이다. 글이 어떻게 후배이고 절친일 수 있나. 한마디로 말이 안 된다. 도대체 그가 전하려고 의도했던 뜻은 무엇일까. 위 글을 누가 썼다는 건가. 손흥민 선수에 대한 짠한 이야기를 듣고서 받은 감동이 이를 전한 이의 횡설수설 글로 말미암아 크게 반감되고 말았다. 그는 원래 글을 이렇게밖에 못 쓰는 걸까. 아니면 잘 쓸 수 있는데 오늘 어쩌다 부주의한 걸까. 알 수 없다. 그러나 말은 하는 즉시 증발하지만 글은 두고두고 남는다. 그래서 신중하게 써야 한다. 쓰고 나서 뭐가 잘못된 데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하긴 이런 글이야 사적인 폐쇄 공간에서의 주고받음이니 누가 뭐라 하겠느냐마는 민법 제162조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는 온 국민에 적용되는 법조문이다. 단 한 글자도 틀려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비문이 67년째 그대로인 것은 실로 불가사의다. 우리는 이토록 말에 무관심한 국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