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이 궁금하다
필자는 육십 넘게 살면서 영현백이라는 말을 몇 달 전 처음 들었다. 군 당국이 평소 천팔백여 개의 영현백을 보유하고 있다가 2024년 12월에 갑자기 3천 여 개를 더 확보하여 보유량이 4,940개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먼저 영현백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었다. 영현백? 백은 알겠는데 영현? 알고 보니 영현백은 시신 운반용 가방이었다. 줄여서 시신 가방이라고도 한단다. 이게 영현백이라 불리게 된 건 2010년 천안함 사건 때부터라고 일부 인공지능은 설명하지만 빅카인즈 기사 검색을 해보면 이미 2008년 신문 기사에 영현백이 쓰이고 있었다.
그렇다. 시신 가방과 비교해볼 때 영현백은 훨씬 품위 있게 느껴진다. 잘 모르는 말, 평소 잘 쓰지 않는 말은 왠지 엄숙한 느낌이 든다. 이에 비해 시신 가방은 얼마나 차디찬 느낌인가. 아마 시체 가방이었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같은 뜻이라도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선거가 코앞에 닥치니 지인들이 이런저런 의사 표현을 한다. 그리고 내 생각이 어떤지 슬며시 떠보기도 한다. 오늘 한 친구가 말했다. 작년 당국의 갑작스런 영현백 대량 구매가 돌발사태에 대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불행한 사태에 대한 준비 차원이었다는 것...... 상식적으로야 충분히 그렇게 볼만하지만 증거가 없지 않나. 어떻게 그렇게 단정할 수 있나. 이럴 때 영현백 대량 구매가 과연 대량 살상에 대한 사전 대비 차원이었음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사실 여부를 가려야 할 사법당국은 이에 대한 조사도 하고 있지 않는 줄 안다. 그렇다면 이대로 영원히 덮이고 말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를 숨기려고 한다. 본능이겠다. 그러나 21세기 법치주의 문명국가에서 대량 살상이 일어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살상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덮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과 관련해서는 온갖 흉흉한 소문이 다 나돌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것도 많다. 그럼 의문은 더욱 부풀어 확대재생산될 수도 있다. 그러지 않도록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겠다. 난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 왜 갑자기 그렇게 많은 가방을 확보했나 말이다.
마지막으로 영현백의 영현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영현은 英顯인가 靈顯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英顯이다. 영현(英顯)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그런데 병원에는 영현실이 있다. 이때의 영현실은 靈顯室이다. 영안실도 靈安室이다. 그러나 호국영령의 영령은 英靈이다. 英을 보통 꽃부리 영이라고 하지만 뛰어나다, 빛나다라는 뜻이 있다. 영웅의 영도 英이다.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며 말만 그럴듯하게 한다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