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검사징계법 개정을 보며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에 남은 일본어 흔적

by 김세중

검사징계법 문제가 언론에서 주목받고 있다. 여당에서 검사징계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법무부장관이 직접 개별 검사의 징계를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검찰총장의 힘은 줄게 되고 검찰의 독립성이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가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늘 검사징계법과 관련은 있으되 전혀 딴 문제를 거론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검찰청법도 있지만 검사징계법이 별도로 있다. 마치 법원조직법이 있지만 법관징계법이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검찰청법은 1949년 12월 제정됐고 법원조직법은 1949년 9월에 제정됐다. 그리고 검사징계법은 1957년 2월에 제정됐고 법관징계법은 1956년 1월에 제정됐다. 검사징계법, 법관징계법은 각각 검사, 법관의 징계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이다. 법 제1조에 그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어서 나오는 제2조가 징계 사유이다. 어떤 경우에 검사, 법관을 징계하는지가 제2조에 명시되어 있다. 오늘 논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징계 사유, 정확히 말하자면 징계 사유에 대한 국어 표현이다. 궁극적으로는 검사징계법이 아니라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을 문제삼고자 한다.


현재 검사징계법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제2조(징계 사유) 검사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그 검사를 징계한다.

1. 「검찰청법」제43조를 위반하였을

2.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하였을 때

3. 직무 관련 여부에 상관없이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그런데 제2조는 이 법률이 1957년 2월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어땠을까. 다음과 같았다.


제2조 (징계사유) 징계는 검사로서 직무상의 의무에 위배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검사로서의 위신을 실추하게 하는 소행이 있는 때에 이를 행한다.


표현은 꽤 달라졌지만 근본적인 취지는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제정 당시의 '직무상의 의무 위배하거나'가 지금은 '직무상의 의무 위반하거나'로 바뀌었다. '위배하거나'가 '위반하거나'로 바뀌었고 '의무에'가 '의무를'로 바뀌었다. '위배하다'를 왜 '위반하다'로 바꾸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위반하다'가 보다 일반적인 표현이라 보아 그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의무에'는 왜 '의무를'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위반하다'든 '위배하다'든 모두 타동사이기 때문이다. 타동사는 목적어를 취하고 목적어에는 목적격조사 '을/를'이 와야 한다. '의무 위배하다'는 문법을 어겼다. '의무 위배하다'라야 문법에 맞다. 1957년에 제정된 검사징계법 제2조의 '직무상의 의무 위배하거나'는 국어문법을 어긴 표현이었다. 그것이 지금은 바로잡혔다. 그럼 언제부터 바로잡혔을까. 검사징계법은 2009년 11월 2일에 개정되었는데 그때 현재의 조문과 같이 바뀌었다.


법관징계법도 마찬가지다. 지금 법관징계법 제2조는 다음과 같다.


제2조(징계 사유) 법관에 대한 징계 사유는 다음 각 호와 같다.

1. 법관이 직무상 의무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한 경우

2. 법관이 그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


그러나 법관징계법이 1956년 1월에 제정되었을 때는 다음과 같았다.


제2조 (징계사유) 징계는 법관으로서 직무상의 의무 위배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법원 또는 법관으로서의 위신을 실추하게 하는 소행있는 경우에 이를 행한다.


제정될 당시 법관징계법 제2조의 '의무에 위배하거나'가 국어문법에 맞게 '의무를 위반하거나'로 바뀐 것은 1999년 1월 21일이다. 검사징계법에서 '의무를 위반하거나'로 바뀌기 10년 전이다.


어쨌거나 우리 법률 조문에서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문법에 맞게 바뀌는 일은 느리지만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1999년에 법관징계법이, 2009년에 검사징계법이 그렇게 바뀌었다. '의무 위배하거나' 혹은 '의무 위반하거나'는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법 개정을 이끌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다. 지금도 민법, 형법, 항법, 형사소송법 등에는 국어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음을 보자.


민법

제38조(법인의 설립허가의 취소)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주무관청은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형법

제112조(중립명령위반) 외국간의 교전에 있어서 중립에 관한 명령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상법

제176조(회사의 해산명령) ①(전략)

3. 이사 또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하는 사원이 법령 또는 정관 위반하여 회사의 존속을 허용할 수 없는 행위를 한 때


형사소송법

제441조(비상상고이유)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그 사건의 심판이 법령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


저항은 끈덕지다. 무슨 이유로 법률가들은 번히 틀린 것을 고치려 하지 않는가. 국민이 눈을 떠야 한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 요구해야 한다. 이런 법조문의 표현은 볼썽사납고 꼴불견이다. 올해로 광복 80년을 맞는데 일본어 흔적이 아직도 법조문에 남아 있다니 기가 막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 정부에 기대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