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신붓감 유감

사이시옷 조항은 혼란만 조장할 뿐이다

by 김세중

단어의 역사에 관해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 상식으로 간주되는 말이 있다. "모든 단어는 각기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어의 고유한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언어정책을 보면 이런 언어학의 상식이 무시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필자는 다음 기사를 접하고 신붓감이란 말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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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붓감은 왠지 낯설다. 때문이다. 신부감이 눈에 익다. 이를 객관적으로 확인해 보기 위해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찾아보았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는 1920년부터 1999년까지의 신문기사를 제공한다. 20세기 100년 중에서 80년간의 신문기사 검색이 가능하다. 신부감은 741건이 검색된 데 비해 신붓감은 8건에 그쳤다. 필자가 신붓감을 어색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살아오면서 신부감만 보다가 최근 들어 신붓감을 자주 마주치니 생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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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신부감이 쓰이고 있다가 왜 갑자기 신붓감이 나타났게 됐을까. 이유가 있다. 1988년 한글 맞춤법이 고시되면서부터다. 이 맞춤법에 따라 편찬된 표준국어대사전이 1999년에 발간되었다. 이 사전에는 신부감이 아니라 신붓감이 표제어로 올랐다. 신부감은 틀린 말이 되고 신붓감이 바른 표기가 된 것이다. 줄곧 신부감으로 쓰이던 말이 사전에 따라 신붓감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1988년의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합성어에서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앞말의 받침에 사이시옷을 붙인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의 적용을 받아 신부감이 틀린 표기가 되고 신붓감이 바른 표기가 된 것이다. 신부감이라는 말의 역사를 1988년 한글 맞춤법 제30항이 바꾸기 시작했다.


맞춤법 규칙이 개별 단어의 역사를 임의로 바꾸어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왜 멀쩡히 잘 쓰던 말을 다른 표기로 바꾸려 드는가. 그마저도 쉽게 되지 않는다. 1990년부터 지금까지의 신문기사를 검색할 수 있는 빅카인즈에 따르면 신부감은 2,380번, 신붓감은 2,698번 검색되었다. 신붓감이 좀 더 많기는 하지만 신부감도 여전히 쓰이고 있다. 왜 이런 혼란을 자초하는가. 한글 맞춤법 제30항이 아니었다면 이런 혼란이 빚어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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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일본의 차기 총리로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떠올랐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의 제목에 총리감이라는 말이 쓰였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에 따르면 총릿감이라야 하지 않나. 그런데 왜 총리감이라 썼을까. 차마 총릿감이라고 쓸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은 단어의 고유한 역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언어학의 상식을 무시한다. 그것은 언어 혼란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말은 규칙적이지 않다. 규칙을 들이밀며 따르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당하지 않다. 총릿감이라고 쓰라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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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귀에 너무나 익은 말이 있다. 둘레길이다. 발음이 둘레낄이지만 우리말샘에는 표제어로 둘레길을 올려놓고 있다. 한글 맞춤법 제30항을 따르면 둘렛길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도 둘레길이라 하고 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둘렛길이라 하는 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예처럼 신붓감신부감으로 돌려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맞춤법 제30항을 손보는 것이다. 없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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