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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는 파리과 곤충

지켜지지 않는 규칙은 없는 게 맞다

by 김세중

오늘 한 신문이 러브버그에 대해 큼직하게 기사를 실었다. 러브버그가 들끓어 고통을 하소연하는 주민들 이야기 하며 러브버그를 잡아다 버거를 만들어 먹었는데 참 맛있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그런데 기사 말미에 필자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 러브버그에 대한 설명에 약 1cm 크기 파리과 곤충이라고 했다. 여기서 파리과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왜냐고? 국어사전에는 파리과라 돼 있을 리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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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랬다. 국어사전에는 파리과는 없고 파릿과만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털파릿과가 있다. 국어사전에 돼지과 혹은 돼짓과는 없고 멧돼짓과만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돼지를 대표하는 것은 멧돼지고 우리가 보통 말하는 돼지는 집돼지다. 파리도 털파리가 파리를 대표하나 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털파릿과만 있는 게 아니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무려 14개의 파릿과가 실려 있다. 똥파리, 쇠파리, 쉬파리, 초파리까지는 들어본 듯하지만 거미파리, 기생파리, 꽃파리, 나방파리, 대모파리, 벌붙이파리, 좀파리 등은 생소하기만 하다. 동물학자들에겐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파리과는 없고 일제히 파릿과다. 사이시옷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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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신문에 쓰인 약 1cm 크기 파리과 곤충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국어사전을 충실히 따르는 교열 부서에서도 차마 파릿과라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 같다. 교열부서에서조차 국어사전에 파릿과라 돼 있는 줄 몰랐거나. 우리 국민 중 파리과가 아닌 파릿과가 바른 표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몹시 의문스럽다. 국민들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파리과가 맞는 표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오로지 국어사전만 용감하게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파릿과라 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인공지능이 보여주고 있다. 사이시옷 없이 집파리과, 쉬파리과, 금파리과, 초파리과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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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하고 무차별적인 사이시옷 사용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본다. 국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 맞춤법 조항(제30조)을 손볼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파릿과라고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파리]처럼 된소리가 날 때는 사이시옷을 붙인다고 규정에 돼 있는데 이 조항 때문에 파리과라고 쓸 수가 없다. 파릿과라 써야 한다. 그러나 위에서 보다시피 현실에서는 온통 파리과다. 발목을 잡고 있는 맞춤법 조항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정이 언어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옥죄고 있지 않나. 지켜지지 않는 규칙이라면 없애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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