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엉망이어도 상관없나
상법이 드디어 개정됐다.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일부개정법률안이 찬성 220, 반대 29, 기권 23으로 가결되었다. 이제 대통령의 공포만 남아 있다. 중요한 변경 사항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됐다. 소액주주의 권리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또한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이름을 바꾸고 그 비율도 높였다.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회사에 대해 전자주주총회를 개최하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이러한 상법 개정은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필자는 좀 다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상법이 이번에 크게 달라졌지만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가 조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상법이든 뭐든 모든 법률은 말로 표현된다. 대한민국의 법률은 한국어로 씌어 있다. 그리고 한국어는 다른 모든 언어가 그렇듯이 문법에 따른다. 한국어 문법에 맞아야 한국어 문장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상법에는 문법에 안 맞는, 그래서 말이 안 되는 문장이 숱하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했는데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해야 말이 된다. 사채의 모집이 완료한 때에는이라고 했는데 사채의 모집이 완료된 때에는이든지 사채의 모집을 완료한 때에는이어야 한다. 다른 정함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말을 대체 누가 쓰나.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하면 뜻이 분명하다.
상법에는 이렇게 문법에 안 맞고 낯설기 짝이 없는 표현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런 괴상한 표현들은 1962년 상법이 제정될 때 생겨나서 무려 6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런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문장들은 법률가들이나 법학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모양이다. 말이 안 돼도 입법 취지가 짐작이 되니 아무렇지 않은가 보다. 그리고 이런 틀리고 잘못된 문장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데 앞장서야 할 국어학자들이나 국어운동단체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된다. 국어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나라가 선진국일 리가 있나. 상법 개정을 지켜보며 안쓰러움을 금치 못하겠다. 우린 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