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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非文)

법전의 비문을 생각한다

by 김세중

비문이란 말은 사실 그리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을 쓸 일이 무에 그리 있겠는가. 아마 '비문이 뭐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 신문의 기사 제목에 非文이 큼직하게 들어 있었다. 생소한 단어에 뜨악하게 생각한 독자도 꽤 있었을 것 같다.


비문이란 말을 평소 쓸 일이 별로 없는 것은 우리가 언어생활을 하면서 비문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문장을 말하는 것인데 문장은 문법을 지킨 문장을 가리킨다. 문법을 지키지 않은 문장은 문장이 아니다.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문법을 지킨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비문은 문법을 지키지 않은 문장으로 우리는 어쩌다 실수로 비문을 말하는 일은 있어도 의식적으로 비문을 말하는 일은 없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문법을 지키면서 말하고 있다. 문법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한 장관 후보자가 자기 논문에 제자의 석사 논문에 있는 비문까지 그대로 옮겨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용하 않았으며"라는 말은 국어에 없는데 틀린 말까지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다. "사용하 않았으며" 혹은 "사용하고 있지 않았으며"를 잘못 쓴 말일 것이다. 제자의 석사 논문의 비문도 부끄러운 일인데 그것을 스승이 그대로 반복했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3_0a7Ud018svc1he46vy8q6553_hgt0e.jpg '非文'은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되풀이하지만 비문은 문법을 지키지 않아 말이 안 되는 문장이다. 말에는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머릿속에 지니고 있는 문법이 있다. 우리 모두는 늘 문법을 지켜서 말하려고 애쓴다. 문법은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문법을 지켜서 말할 때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진다. 반대로 문법을 어길 때 무슨 말인지 의아하게 느껴지고 소통이 더뎌진다. 눈살을 찌푸리게도 된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있다. 법은 가장 엄격하게 문법을 지켜야 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에는 문법을 어겨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부지기수다. 벌써 70년 가까이 이런 실상이 개선되지 않고 그대로다. 법은 속뜻이 중요할 뿐 문법 따위는 좀 틀려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법조계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말뿐인 듯하다. 법은 법조인만 알면 되고 일반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없다면 어찌 문법에 안 맞는 법조문을 바로잡지 않고 수십 년째 그대로 두고 있나. 국민은 알 권리를 찾아야 한다. 법조문도 문법을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법조문도 문법을 지킬 때 비로소 일반 국민도 법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법조문의 비문(非文)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e_9fdUd018svc11qpyg63cyb7x_hgt0e.jpg 2024년 4월 20일 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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