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와 의암호나들길
9일전에 춘천을 찾아 봄내길 4코스를 걸은 적이 있다. 춘천역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향해 소양강스카이워크도 걷고 신매대교를 건너 춘천문학공원까지 갔었다. 그 길은 봄내길 4코스의 절반 이상이었지만 그때 못 간 부분이 있어 오늘 춘천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봄내길 4코스(의암호나들길)의 나머지만 걷기에는 시간이 너무 널널한 것 같아 중도(中島)에 가보기로 했다.
춘천역을 나와 바로 춘천대교를 넘기 시작했다. 찌는 듯한 여름은 이미 시작했고 기나긴 춘천대교를 걷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자동차만 드문드문 다리를 지나갈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춘천대교 가운데에 위치한 거의 원에 가까운 아치는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참으로 아름답다. 둥근 원이 주는 편안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길을 멈춰 그 아치를 폰 카메라에 담았다.
드디어 다리를 건너고 나니 중도다. 중도 중에서도 하중도다. 생전 처음 발을 디뎌 보는 하중도는 무척 삭막했다. 그 유명한 레고랜드가 저 멀리 보였다. 도대체 지금 영업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도 짓고 있는 중인가. 멀리서 봐서는 알 수 없다. 아무튼 하중도 개발은 진행 중인 듯했고 구획만 되었을 뿐 대부분의 땅은 빈터였다. 레고랜드쪽으로 가보고 싶은 맘이 안 났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상중도를 향해 걸었다.
상중도와 하중도를 잇는 다리인 중도교를 건넜다. 상중도에 온 것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낚시터가 눈앞에 나타났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망설이다 왼쪽으로 접어들었다. 상중도를 웬만큼 둘러보고 되돌아나올 요량이었다. 숲지대를 지나니 옥수수밭이 나왔다. 갑자기 퍼드득 동물 움직임이 포착됐다. 노루 같았다. 무엇에 놀랐는지 껑충껑충 밭을 뛰어갔다. 본능적으로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동물의 움직임은 날쌔기 그지없다. 간신히 동영상을 촬영하고 돌려보니 1초도 안 되는 분량의 모습만 잡혀 있었다. 상중도에서 야생노루를 봤다.
중도교를 건너 하중도로 넘어왔고 기나긴 춘천대교를 건너 의암호나들길로 돌아왔다. 봄내길 4코스로 말이다. 거대한 의암호의 가장자리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춘천시문화광장숲에는 근사한 전망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공중에 있는 듯하니 이곳도 스카이워크라 할만한데 그런 이름은 붙어 있지 않았다. 의암호가 펼쳐져 있었고 바로 앞에 작은 섬이 있었다. 그 뒤는 하중도였고...
10분쯤 걸었을까, 춘천사이로248이 나타났다. 출렁다리다. 다리 길이가 248m란다. 아주 살짝만 출렁이는 비교적 단단한 다리가 공지천 끝 무렵에 놓여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기분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꼬부라지니 갑자기 숲속 데크길이다. 춘천MBC가 왼편 산 위에 서 있었다. 그 아래를 지나니 상상마당이 나타났고 또다시 숲속 데크길이 나왔다. 그러나 곧 다시 긴 아스팔트길이었다. 땡볕과 싸우며 걷다 보니 의암호 하늘 위로 꼬물거리며 움직이는 게 보였다. 케이블카였다.
춘천삼악산호수케이블카 타는 곳에 이르러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니 다시 힘이 났다. 어디까지 가볼까. 신연교와 의암댐까지 가보나. 그러나 더위가 만만치 않았다. 숲속 데크길을 걸을 땐 그리 힘든 줄 몰랐지만 아스팔트 구간은 무척 힘겨웠다. 숲속 데크길과 아스팔트 구간이 계속 교차하는 행로였다. 결국 의암스카이워크에 이르러 더 갈 맘을 접었다. 조금만 더 가면 신연교, 의암댐인데....
의암스카이워크는 자그마했다. 일전에 가본 소양강스카이워크에 비해선 작았다. 그러나 주변 풍치는 아름다웠다. 어디 크다고만 해서 좋은가. 옛경춘로를 따라 걷다 보니 송암스포츠타운 가는 길로 빠지는 삼거리에 이르렀고 거기서 오늘의 걸음을 멈추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 오기를 기다렸다. 7번 버스가 이내 왔고 약 17km에 이른 오늘의 걷기를 마쳤다.
춘천은 호수의 도시라 수상스포츠가 활발하다. 그뿐이 아니다. 삼악산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케이블카가 하늘을 오간다. 다음엔 모터보트도 타보고 케이블카도 타볼 수 있을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10여 년 전 춘천마라톤을 두 번이나 뛰었으니 춘천과의 인연은 오래다. 그러나 춘천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봄내길이 8코스까지 있다는데 4코스 말고 나머지 코스는 못 가봤으니 말이다. 가볼 데가 남아 있다는 건 기대에 부풀게 한다. 가까운 장래에 또 춘천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