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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정은 냈지만 격노는 아니었다?

이게 설득력이 있나

by 김세중

신문 기사를 읽고 뜨악할 때가 있다. 역정은 냈는데 격노한 건 아니라고 전 국방장관이 말했단다. 적지 않이 당황스러웠다. 역정은 냈지만 격노는 아니라니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 인공지능에 물어보았다. "역정은 냈어도 격노는 하지 않을 수 있나?"라고 물으니 "네, 역정을 냈어도 격노는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역정과 격노는 모두 '화'라는 감정을 나타내지만, 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라 답했다. 화는 냈지만 역정이라 할 수는 있어도 격노까지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가 역정이고 어느 정도부터는 격노인가. 역정과 격노를 구별짓는 경계란 존재하나. 존재할 턱이 없다. 그저 주관적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격노했다고 보는 것을 다른 사람은 그저 역정을 낸 것뿐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단지 역정을 냈을 뿐이라고 하는 걸 다른 사람은 격노했다고 볼 수 있다. 답이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역정은 냈지만 격노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건 도무지 설득력이 있나.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역정과 격노의 공통점에 더 주목하고 싶다. 역정은 "몹시 언짢거나 못마땅하여서 내는 ."이라 국어사전에 뜻풀이되어 있다. 그리고 은 "노엽거나 언짢게 여겨 일어나는 불쾌한 감정."이다. 격노는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름."이라 뜻풀이되어 있다. 결국 역정분노노여움에서 생기는 행동이다. 노여움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역정은 냈지만 격노는 안 했다고 말하려면 역정과 격노가 단지 양적인 차이가 아닌 질적인 차이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역정이나 격노나 다 노여움에서 비롯된 것임은 같다. 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상관에게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뜻은 알겠으나 말은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 않나. 자신이 한 말이 과연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었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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