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한 신문의 인터넷판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 청문보고서 채택키로 결단"이라 돼 있어서다. 왜 이것이 눈에 띄었을까. 채택키로는 채택하기로의 준말이다. 채택하기로의 준말이 채택키로인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상식이 실은 통하지 않고 있다. 인공지능에 "'채택하기로'가 줄면 '채택키로'인가 '채택기로'인가?"라고 물으면 인공지능은 대부분 채택기로가 맞고 채택키로는 틀리다고 답하기 때문이다.
한 인공지능의 답변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아주 단호하게 채택키로는 틀리고 채택기로가 맞다고 답한다. 물론 모든 인공지능이 다 이렇게 답하는 건 아니고 뤼튼 같은 인공지능은 줄이지 말고 채택하기로로 쓰는 게 좋다고 답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 인공지능은 채택기로가 맞다고 한다. 왜 인공지능은 채택기로가 맞다고 하는가. 이유가 있다.
한글 맞춤법 제40항의 해설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들어 있다.
[ㄱ] 넉넉하지 않다→넉넉지 않다→넉넉잖다
[ㄷ] 깨끗하지 않다→깨끗지 않다→깨끗잖다
[ㅂ] 답답하지 않다→답답지 않다→답답잖다
'하' 앞의 받침의 소리가 [ㄱ, ㄷ, ㅂ]이면 '하'가 통째로 준다고 했다. 그래서 넉넉찮다가 아니고 넉넉잖다이고 깨끗찮다가 아니고 깨끗잖다이며 답답찮다가 아니고 답답잖다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따르면 채택하기로가 줄면 채택기로가 된다. 인공지능이 단호하게 채택기로가 맞고 채택키로가 틀리다고 한 것은 바로 이 한글 맞춤법 해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넉넉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다, 답답하지 않다는 모두 순우리말이다. 한자어가 아니다. 채택(採擇)과 같은 한자어의 경우에는 채택하기로가 줄었을 때 채택키로로 발음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당연히 발음대로 채택키로라고 쓰기 마련이다. 신문 기사 제목에 채택키로라고 한 것이 그 예다.
필자처럼 이 분야에 오래 종사한 이나 채택키로에 관심을 가지지 일반인들은 채택키로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대로 인공지능은 채택키로가 틀렸고 채택기로라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한글 맞춤법이 한자어의 줄임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언급하지 않았으니 한자어도 순우리말과 같이 취급해 '하'가 통째로 준다고 가르치는 인공지능이 나오는 것이다. 규정이 한자어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엉뚱한 일이 빚어지고 있다. 인공지능 잘못이 아니다. 규정이 미비한 탓이다. 부실한 규정은 없는 것만 못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