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밭

문법 오류는 사소한가

법은 법률가들만 알면 되나

by 김세중

나는 법률 문외한으로서 2022년에 민법의 비문, 2024년에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펴낸 바가 있다. 국가와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인 법은 엄밀하고 정확하여 눈곱만큼의 오류도 없을 줄 알았는데 찬찬히 뜯어보니 문법을 어겨 말이 안 되는 문장이 부지기수임을 알고 깜짝 놀라 책을 써내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세상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어차피 법은 법률가만 보는 것이고 법률가들이 무슨 뜻인 줄 알면 되는 것이지 문법에 좀 어긋난들 그게 무슨 대수냐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법조문의 문법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움직임은 그 어디서도 감지되지 않았다. 국회, 법무부, 법제처 어디서도 미동하지 않았다. 법학계도 물론이었다.


그런데 전혀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22년 봄 필자가 쓴 민법의 비문이 발간되고 그해 6월 한 법률전문지에 저명한 민법학자가 이 책을 언급했다. 다음과 같았다.


c1.png 2022년 6월 2일


그는 민법의 비문이라는 책이 나왔음을 언급한 뒤 "그러나 나는 어디까지나 우리 민법의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문법상의 오류가 아니라 민법의 규정내용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고 했다. 뭔가 좀 이상하다. 단순한 문법상의 오류는 괜찮다는 것인가. 민법의 규정 내용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고 했는데 문법상 오류가 있으면 민법의 규정 내용을 이해하는 데 당연히 영향을 미치지 문법상 오류가 있는데도 민법의 규정 내용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나? 한 예를 들어보자.


민법 제238조는 다음과 같다.


제238조(담의 특수시설권) 인지소유자는 자기의 비용으로 담의 재료를 통상보다 양호한 것으로 할 수 있으며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또는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


"... 그 높이를 통상보다 높게 할 수 있고 또는 방화벽 기타 특수시설을 할 수 있다"에서 '있고' 다음에 '또는'이 왔다. AND와 OR가 이어진 셈이다. 이 조문의 원래 의도는 AND인가 OR인가. 해설서에 따르면 AND이다. 따라서 또는이 없어야 맞다. 따라서 제238조 문장은 문법적으로 틀렸다. 문법적으로 오류니 민법의 규정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이런 것을 단순한 문법상의 오류라며 가벼이 여길 게 아니다.


다시 3년이 흘렀다. 같은 전문지에 바로 같은 민법학자가 다음과 같이 썼다.


c2.png 2025년 3월 22일


이번에는 아예 필자의 이름까지 밝혔다. 그런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필자는 다시 한번 묘한 감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땅에 수많은 법학자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필자의 저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분만은 예외적이었다. 필자의 책을 콕 집어 글에 적시한 것 자체가 이 책들이 의미 있음을 인정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아리송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들은 민법전의 내용에 대한 것은 아니고 그 규정의 문법적 내지 형식적 측면, 굳이 말하자면 넓은 의미에서 편집상의 오류에 대한 것이었다."라고 했다. 즉 자신이 쓴 과거의 글이 민법전의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고 문법적 내지 형식적 측면에 대한 것이라는 말이었다. 필자의 두 권의 책이 바로 민법전의 문법적 측면을 지적한 것인데 그렇다면 그와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분은 바로 이어서 김세중, <<민법의 비문>>(2022년)이나 동,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년)와는 각도를 달리한다고 했다. 민법전의 내용을 다루지 않고 형식적 측면을 다룬 점은 같지만 각도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각도를 어떻게 달리했다는 것인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법학자들은 매우 치밀하게 논리 전개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듬성듬성 단계를 뛰어넘기도 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말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민법의 내용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조문의 문법을 문제삼는 거라면 사람마다 다를 게 없다. 문법을 어겼느냐 어기지 않았느냐를 따지는 데 여러 각도가 있을 리가 없다. 문법은 하나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같은 문법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문법이 다를 수 있나.


법조문은 한국어 문법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하지만 문법에 맞지 않는 엉터리 한국어 조문이 수십 년째 요지부동한 채 민법을 비롯한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에 숱하게 깔려 있다. 이 기막힌 현실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가 선진국 수준에 올랐지만 법조문만은 낙후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대부분 1950년대에 제정된 이들 법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일본어로 공부한 법률가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따라서 일제 잔재라 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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