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천과 경안천을 따라 걷다
경기도 광주 하면 서울에서 지척이다. 남한산성이 바로 광주시에 있고 남한산성은 서울 송파구와 인접해 있다. 그리고 산성은 자주 갔던 곳 아닌가. 또 언젠가는 용인에서 산행을 시작해 정광산, 노고봉 지나 초월로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경기도 광주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몇 해 전 판교-여주 전철도 개통돼 여주 갈 땐 늘 광주를 거쳐 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광주를 제대로 살펴본 적이 없다 싶어 오늘 작심하고 광주 도보여행에 나섰다.
요즘 왠지 산보다는 평지 걷는 게 부쩍 당긴다. 나이를 먹어서일까. 전국적으로 강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강 따라 걷기 좋은 길이 나 있다는 것에 착안했다. 광주라고 다를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광주는 천(川)이 많지 않나. 지도를 보니 곤지암천이 상당히 길었다. 경안천은 물론 더 길다. 곤지암천을 걷다가 경안천으로 들어서서 줄기차게 걸어 경안천습지생태공원까지 가는 코스를 잡아 보았다.
곤지암역에서 시작할까, 초월역에서 시작할까 재보다가 곤지암역부터 걷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싶어 초월역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판교에서 경강선 전철을 타고 초월역에서 내렸다. 역 부근에 곤지암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고 바로 넓은 보행로가 나타났다. 자전거 겸용인 길이었는데 한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서라고는 하나 아직 여름인데 누가 땡볕에 걷거나 자전거를 타겠나. 아니, 여름이 아니어도 이 길은 그리 사람이 많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주변에 주택이 밀집해 있지 않으니까.
곤지암천 따라 난 길은 나중에 알고 보니 너른고을길이었다. 너른고을길은 경기광주역에서 곤지암역까지 14.4km인데 경기옛길봉화길3길이었다. 경기옛길봉화길은 계속 남쪽으로 가다가 부발에서 갈라져 한쪽은 여주까지 이어지고 다른 한쪽은 장호원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나는 오늘 너른고을길을 북쪽으로 걸었다. 초월역이 있는 곳은 쌍동리였고 대쌍령리를 지나 도평리로 들어서니 갑자기 깊은 산중에 들어선 듯이 온통 자연이었다. 인공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곤지암천은 도평리에서 한번 크게 굽이쳐 휘도는데 자전거길이 끝나는 지점에 쉼터와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광주시민탁구장이 있었다. 문을 빼꼼히 열고 들여다보니 에어컨 바람이 여간 시원하지 않았고 사람들이 열심히 탁구를 치고 있었다. 이런 외진 곳에 시민을 위한 탁구장이 있어 놀라웠다. 부근에 하수종말처리장이 있었다. 다리를 건넜다. 섬뜰교였다. 길 왼편으로 식당, 카페 등이 즐비했다.
도평리를 지나 지월리다. 지월아치교를 지났다. 아치 모양의 다리다. 점점 경안천이 가까워 온다. 그리고 차량 통행이 많아졌다. 초행길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멀지만 확실한 길로 갈 것이냐, 샛길이지만 불확실한 길로 갈 것이냐. 경안천 너머로 길이 있는 건 알겠는데 샛길로 갔을 때 과연 경안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느냐가 문제였다. 만일 다리가 없다면 되나와야 한다. 그러니 샛길로 가는 건 모험이다. 안전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멀지만 돌아서 가기로 했다. 그러나 계속 가면서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는지 예의주시했다.
지월새마을교를 건너고 경안천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이제 경안천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10분쯤 걸었을까.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였다. 자동차는 갈 수 없었지만 보행자나 자전거는 지날 수 있는 길이었다. 모험을 했더라도 될 뻔했다. 그러나 만일 다리가 없었다면 그 낭패는 말도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다음에 올 일이 있다면 샛길로 가리라.
지월리 칠사산 아래에 아파트단지가 있는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를 지나고 얼마 안 가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깊고 깊은 산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나마 위로 중부고속도로가 지나갈 때는 차소리라도 시끄러웠지 그곳을 지나니 소리도 잠잠해지면서 참으로 호젓하기 그지없었다. 칠사산 오르는 등산로 입구를 지나니 마을이 나타났다. 서하리였다. 엄청난 비닐하우스 단지가 계속 이어졌다. 도중에 거대한 동네 표지석을 만났다. 서하리 사마루라 씌어 있었다. 사마루가 전통적으로 부르던 마을 이름인 모양이다. 거기에 해공 신익희 선생 생가가 있다. 1956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서하리 동쪽 끝 한적한 길을 줄기차게 걸었다. 길 왼편으론 온통 비닐하우스뿐이었다. 드디어 갈림길이 나타났다. 초월읍의 끝이었다. 이제 퇴촌면이다. 경안천누리길은 직진해야 한다. 광동교까지 간 다음 경안천습지생태공원까지 이르는 길이 경안천누리길이다. 그러나 힘이 빠졌다. 눈앞에 경안천을 건너는 길이 보이고 그 길을 지나면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을 빨리 갈 수 있다. 아마 광동교까지 간 뒤 생태공원에 이르는 길을 걷는다면 적어도 4km는 더 걸어야 할 거 같았다. 미련 없이 경안천을 건넜다.
다리 길이는 족히 200미터는 넘어 보였고 물새들이 보에도 여러 마리, 경안천 물 위에도 많이 떠 있었다. 평화로웠다. 마침 떼 지어 날아가기에 동영상도 찍었다. 이제 퇴촌면 정지리다. 이젠 왼편으로 강이고 오른편으로 비닐하우스 농원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길은 한적하고 마주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좀 무료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차츰 경안천습지생태공원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로수가 우거진 길이 나타나면서 경안천습지생태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습지는 참으로 넓었다. 곳곳에 뱀 출현 주의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뱀이 얼마나 많기에! 몇 백 미터를 걸었을까. 드디어 공원다운 모습이 나타났다. 습지 곳곳에는 백로인지 왜가리인지 물새가 습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연꽃식재지였다. 규모가 엄청났다. 연꽃식재지를 지나니 공원 입구였고 주차장이었다. 18.5km를 6시간 남짓 걸었다. 꼭 다시 걷고 싶다. 오늘 가지 못한 샛길도 가보고 광동교까지도 걸어 보고 말이다.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는 경안천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 광주시에 때 묻지 않은 자연이 살아 숨쉬고 있다. 경안천누리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