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말은 아낄 필요가 있다
친구 중에 독특한 언어 습관을 가진 이가 있다. 그는 만나고 헤어질 때나 통화를 마칠 때면 으레 "내일 봐." 하고 말한다. 내일 나를 볼 일이 딱히 없으면서도 그냥 습관적으로 "내일 봐." 한다. 그런 말을 하고 다음날 실제 만난 일이 거의 없다. 내일 나를 만날 일이 있건 없건 그는 일단 "내일 봐." 하고 본다.
좋게 해석한다면 내게 호의를 갖고 있고 나를 가까이 여기고 있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웬 실없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하나 싶으면서 도무지 그의 말은 믿을 수 없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내일 봐." 해 놓고는 그 말을 금세 까맣게 잊고 다음날 제 볼일만 본다면 그의 말의 진정성을 믿기는 어렵지 않은가. 궁금한 것은 나한테만 이러는 건지 남들한테도 빈말을 남발하는지인데 어떤지 알 수 없다. 설마 나한테만 그러겠나 싶기는 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로 빈말을 할 때가 있다. 그저 건성으로 하는 말이 빈말이다. 다음에 보자느니 언제 한번 식사 같이 하자느니 하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나. 다음에 보자는 말은 딱히 빈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언제 한번 식사 같이 하자 해 놓고 반드시 식사를 하게 되나. 말만 그렇게 하고는 서로 까맣게 잊어 버리는 경우도 숱하지 않나. 그저 인사치레인 것이다. 그런 가벼운 빈말은 사회생활의 윤활유와 같은 것으로서 빈말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다반사니까.
그러나 "다음에 봐."나 "또 봐."와 달리 "내일 봐."는 다르다. '내일'이 구체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은 이 '내일'마저도 구체성이 없다고 여기고 말하는 걸까. 듣는 사람은 그렇게 안 느끼는데... 문제는 "내일 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하는 다른 숱한 말들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그의 신용도와 직결된다.
현대사회에서 신용은 매우 중요하다. 부자건 빈자건 금융기관은 개인에 대해 신용을 평가하고 수치화한다. 금융기관뿐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신용 평가는 알게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용도가 떨어져서 좋을 게 없다. 평판이 좋은 사람은 보다 많은 기회가 생기지만 평판이 나쁜 사람은 점점 기회가 줄어든다. 적당한 빈말은 사회생활의 윤활유지만 지나치면 평판을 떨어뜨린다. 소외를 자초한다. 빈말이라도 고마울 때가 있지만 빈말이 지나치면 혐오감을 유발한다. 아끼는 쪽이 낫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