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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

이게 무슨 말인가 했다

by 김세중

형법에 정당방위가 있고 긴급피난이 있는데 이들은 처벌하지 않는다.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은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먼저 정당방위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달려들어 나를 찔러 죽이려고 했을 때 내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그를 죽였다고 치자. 비록 내가 그를 죽였지만 나는 정당방위를 주장할 수 있다.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나는 처벌받지 않는다.


긴급피난은 무엇인가.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제3자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를 가리킨다. 그런 경우에는 제3자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에 불이 났다 치자. 옆집으로 피신하기 위해 옆집 창문을 깨고 그 집으로 도망쳤다면 옆집 창문을 부순 내 행동은 긴급피난으로 인정되어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형법 제22조의 제2항은 그 예외를 규정하고 있다. 다음과 같다.


제22조(긴급피난)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하여는 전항(제22조 제1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는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했다 하더라도 벌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가 무슨 뜻일까. 과연 어떤 사람이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일까. 아니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라는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알고 보니 제2항은 특정 직업에 대한 예외 조항이었다. 이를테면 소방관이나 경찰관 같은 이들은 어느 정도 위난을 감수하며 직무를 수행해야지 이들마저도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를 한다고 해서 벌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어떤 건물에 불이 나서 소방관이 출동했다. 소방관은 일반인과 달리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해 아무 행위나 해도 좋은 게 아니다. 위난과 맞서야 하고 무조건 피해서는 안 된다. 만일 소방관이 위난을 피하기 위해 제3자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는 일반인은 벌하지 않아도 소방관은 벌한다는 것이 형법 제22조 제2항이다.


법리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위난을 피하지 않을 책임이 있는 자위난을 피해서는 안 될 책임이 있는 자를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해하기 쉬운가. 위난을 피하지 않을 책임이 있는 자 또는 위난을 피해서는 안 될 책임이 있는 자라고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 필자는 형법 제22조 제2항을 접하고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라는 말을 읽고 또 읽었다. 수없이 읽었다. 하지만 도무지 모슨 뜻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이 위난 감수 의무를 의도하고 만든 표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탄식했다. 위난 감수 의무가 있는 자라고 하면 일반 국민이 너무 쉽게 법조문의 뜻을 알아버릴 것 같아 일부러 비비 꼬아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라고 했을까. 위난을 피하지 못할 책임이 있는 자는 난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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