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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기회이기도 하다

by 김세중

오늘 한 조간신문에 눈에 확 띄는 기사가 있었다. 종이 법전을 발간하는 유일한 출판사인 현암사가 내년에는 법전을 내지 않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찍어도 팔리지 않는다면 출판사만 손해다. 손해 볼 일을 할 수 없다. 국회와 법원조차도 법전을 안 산다니 살 사람이 없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 법조인들은 법조문을 알기 위해 법전을 들출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을 열면 법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법조인뿐인가. 법을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법과 관련된 많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실은 법전뿐이 아니다. 국어대사전은 법전보다 훨씬 앞서 종이사전이 사라졌다. 방대한 제작비를 들여 국어대사전을 찍어내봤자 살 사람이 없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국어사전이 들어 있는데 굳이 종이 국어사전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찾는 것도 더 쉽다. 종이사전은 표제어를 찾아 종이를 넘기며 뒤적여야 하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표제어를 검색창에 입력만 하면 정보가 나온다. 훨씬 빨리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어쩌면 성경 같은 경전도 비슷한 길을 걸을지 모르겠다.


종이법전이 사라진다고 법전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형태만 달라질 뿐 법전은 온전히 유지된다. 전달 매체만 다를 뿐 내용은 꼭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용이 달라서야 되겠는가. 법률은 국가와 사회를 지탱하는 제도로서 엄격히 유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면 법전은 종이법전에서 전자화된 법전으로 바뀌면서 온전히 유지되고 있지 않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제 이 점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자 한다.


종이법전과 전자화된 법전은 차이가 있다. 종이법전은 한 가지 형태뿐이다. 두 가지 형태를 지닐 수 없다. 그러나 전자화된 법전은 두 가지 형태를 지닐 수 있다. 이게 또 무슨 소리냐고? 실제 사례를 가지고 보자. 스마트폰으로 제공되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민법을 찾으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그런데 메뉴에 원문변환이란 게 있다. 이 원문변환을 누르면 원문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원문은 한자투성이다. 이게 민법의 원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원문변환된 상태에서는 메뉴에 한글변환이 있다. 이 한글변환을 누르면 원래의 화면으로 돌아간다. 즉 스마트폰의 법전에는 원문한글의 두 가지 형태가 제공되고 있다. 기본으로는 한글로 제공되지만 원문변환을 누르면 원문을 볼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형태가 종이법전에서는 불가능하다.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 두 가지를 다 보여줄 수 없다. 두 가지를 다 보여주려면 책을 두 권 만들어야 한다. 만일 한 권에 넣으려면 앞은 한자 원문, 뒤는 한글로 하면 되는데 책의 두께가 두 배가 된다. 전자화되면서 종이법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우리의 시선을 전자화된 법전에 대해 고정해보자. 엄연히 법률 원문은 한자로 되어 있는데 왜 전자화된 법전은 한글로 된 법조문을 보여주는가. 왜 원문은 원문변환을 눌러야만 나오는가. 이유는 세상의 변화에 있다. 만일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민법 원문을 먼저 보여준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으로 법조문을 찾는 수많은 독자들이 아우성치지 않을까. 새카맣게 적힌 한자를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를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독자의 편의를 위해 한글로 보여주고 있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별로 없기에 그러는 것 아니겠는가. 혹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원문변환을 눌러서 원문을 보면 된다고 하면 그만 아닌가 말이다.


1950년대에 민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무려 70년도 더 지났다. 당시는 온 세상이 한자로 문자생활을 하던 시대였지만 지금은 한자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이런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국가법령정보센터는 한글로 바꾸어서 법전을 보여주고 있다. 원문은 원문변환을 통해서 제공하고 있고.


국회가 온통 한자로 적혀 있는 민법을 한글로 바꾸는 법률 개정을 하지 않았지만 국가법령정보센터는 한글로 법전을 제공한다. 국민들도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다. 민법, 상법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민법

제195조(점유보조자) 가사상, 영업상 기타 유사한 관계에 의하여 타인의 지시를 받어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를 하는 때에는 그 타인만을 점유자로 한다.


상법

605조(이사, 주주의 순재산액전보책임) ①전조의 조직변경의 경우에 회사에 현존하는 순재산액이 자본금의 총액에 부족하는 때에는 전조제1항의 결의당시의 이사와 주주는 회사에 대하여 연대하여 그 부족액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


'받어'는 '받아'라야 하고 '부족하는'은 '부족한'이라야 한다. 이런 것쯤은 초등학생도 안다. 그러나 이런 틀린 말은 국가법령정보센터가 제공하는 민법, 상법에 그대로다. 초등학생도 틀린 줄 알 터이니 법제처 공무원들이 틀린 줄 모를 리 없겠지만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이런 사소한 오탈자조차도 고치려면 국회가 법률 개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률 개정을 하지 않은 채로 공무원들이 함부로 고칠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두고 있는 것이다.


종이사전이 나오던 때에는 이런 사소한 오탈자를 고치는 것도 새 종이사전을 찍어내야 하니 부담스러웠다. 쓰던 종이사전을 버리고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도 문제고 새 종이사전을 찍으려면 제작비가 막대하게 소요되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전자화된 사전에서는 아무 문제가 안 된다. 서버 컴퓨터에서 글자를 고치기만 하면 된다. 종전 사전을 폐기처분해야 할 일도 없고 새 사전을 만드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도 없다. 도무지 부담이 없다. 이렇게 교정이 수월한데도 오탈자를 바로잡지 못하는 것은 법률 개정 절차를 거쳐야만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오류를 바로잡는 일은 국회 손에 달려 있다. 처리해야 할 산적한 법안들이 밀려 있어 이런 일은 눈에 띄지도 않을지 모르지만 법전의 말을 반듯하게 바로 세우는 것은 여야의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간단히 처리할 수 있다. 국회가 정쟁에만 함몰되지 말고 국가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에 합심해 주었으면 한다. 법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이는 법을 반듯하게 바로잡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말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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