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성적인 지적은 식상한다
신문을 보면 요즘 젊은이들의 어휘력이 형편없음을 지적하는 기사가 곧잘 나온다. 한글날이 또 다가오니 그 무렵에 또 이런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싶다. 단골로 지적되는 것이 요즘 청소년들 중에는 금일이라고 했더니 금요일이라고 알아듣는다거나 '심심한 사과를 표했다'를 이해하지 못해 사과를 어떻게 심심하게 하느냐고 되묻는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어휘력 빈곤을 지적하는 신문은 정작 어떤가. 오늘 한 중앙 일간지에 '야근 자처하며'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이건 누가 한 말을 옮긴 게 아니다. 신문사 편집진에서 뽑은 제목이다. 신문사 편집진의 국어 실력을 오롯이 반영한다. 야근을 자청할 수는 있어도 야근을 자처할 수는 없다. 자처하다는 '고수임을 자처하다', '전문가를 자처하다' 등과 같이 쓰이는 말로서 야근 자처하며는 자청하다와 자처하다를 구분 못해서 빚어진 실수다. 신문사 편집기자라면 일반 국민과는 국어 실력이 현저히 다르리라고 짐작하는 게 보통이다. 그들은 장삼이사가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발된 인원일 것이다. 그런데 실수가 나왔다. 빈약한 어휘 실력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미 신문은 전국에 배달되었고 PDF판을 찾아보니 해당 표현은 야근 자원하며로 바뀌어 있었다. 신문사 안에서 뒤늦게 잘못을 알아채고 PDF판에서는 자처하며를 자원하며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자청하며보다 자원하며가 더 알기 쉬운 말이기에 잘 바꾸었다 싶다.
한글날이 다가오는데 또 타성적으로 문해력 저하를 들먹이는 기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한글날만 반짝 국어에 관심을 가져서 되겠는가. 젊은 층의 어휘력 빈곤을 지적하기 전에 신문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