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어 Dolomiti는 돌로미<티>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많이도 좋아진 듯하다. 신혼여행을 유럽으로 가는 건 보통이고 일반인도 유럽 가는 걸 대단하게 생각지 않는다. 이탈리아가 유럽 여행지로 선호되는데 이탈리아의 그 많은 관광지 중에서 북쪽 알프스 산지도 많이들 가는 것 같다. 내 주변에도 이미 이탈리아 북부 알프스에 다녀온 이가 여럿인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장소가 Dolomiti이다.
Dolomiti는 우리의 태백산맥, 소백산맥 같은 '산맥'을 가리킨다. Dolomiti에서 제일 높은 곳이 Marmolada산(3,343m)이고 등산가 아닌 일반인은 마르몰라다에 가기 어려울 것이다. 거기 말고 Dolomiti에 있는 하이킹 코스를 즐기다 오는 게 보통이라 알고 있다. 오늘 내 관심사는 이 Dolomiti를 한국어에서 한글로 어떻게 표기하느냐이다.
내게는 Dolomiti의 한국어 표기로 돌로미테가 익숙하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 것이다. 1920년부터 1999년까지의 신문 기사를 보여주는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산맥을 가리키는 지명 돌로미테가 18건 나오는데 돌로미티는 없다.
흥미로운 것은 산맥을 가리키는 지명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이름으로는 돌로미티가 36건이나 나온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Dolomiti가 수입 판매되었는데 그 한글 표기를 모두 돌로미티라 했다. 그러나 돌로미티는 아이스크림 이름이었을 뿐 지명이 아니었다.
왜 이탈리아어로는 Dolomiti인데 한국에서는 돌로미티라 하지 않고 돌로미테라 해 왔는가. 그것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다. 궁금하지 않은가. 왜 ti가 티가 아니고 테인가. 이 의문에 대해 나는 아직 속 시원한 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심증은 있다. 즉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방증은 몇 가지 갖고 있다. 그 방증을 제시하기 전에 이 지명을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각각 어떻게 표기하는지 살펴보자.
이탈리아어로는 Dolomiti이다. 발음은 돌로미띠에 가장 가깝다(돌로미떼가 아니다.). 이탈리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돌로미티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된소리는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띠가 아니라 티다. 한편 영어로는 Dolomites이다. 이 말의 영어 발음은 돌로마이츠에 가깝다.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돌로마이츠이다. 그럼 도대체 돌로미테는 뭔가. 돌로미테는 어디서 왔는가. 앞에서 Dolomiti를 돌로미테라 해온 이유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방증은 있다고 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영어권 사람들은 이탈리아어 Dolomiti를 영어로 Dolomites라 하고 발음은 돌로마이츠에 가깝게 하지만 자기들도 이탈리아어로는 돌로마이츠라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어로는 이렇게 말한다고 발음을 해 보이는데 그 발음이 희한하게도 [dolomiti]가 아니고 [dolomite]이다. 왜 영어권 사람들이 이탈리아어 Dolomiti를 [dolomite]라 인식하는지는 나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이탈리아어 Dolomiti를 [dolomite]라고 발음하는 사실 자체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음 영상이 이를 증명한다.
분명히 영어로 말하면서 "이탈리아어로는 Dolomiti[dolomite]라고 하는데..." 하지 않는가! 내가 보기에는 이것에 영향을 받아 한국어로 적을 때 돌로미테라 하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다른 방증은 이런 것이다. 일본어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다. 일본은 이탈리아 북부 산맥 Dolomiti를 일본어 가나로 ドロミーティ라고 적는다. 이 ドロミーティ의 テ에 영향을 받아 돌로미테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서는 이탈리아어 표기 Dolomiti보다는 영어 표기 Dolomites를 더 자주 접하는 게 보통이고 이 Dolomites에서 s를 자의적으로 빼버린 뒤 남은 Dolomite를 영어 발음과 관계없이 돌로미테로 읽었을 가능성이다.
좀 미약해 보이긴 하지만 이런 몇 가지 이유로 인해 돌로미티(이탈리아어)도 아니고 돌로마이츠(영어)도 아닌 정체불명의 희한한 돌로미테가 오래전부터 한국어에 들어왔고 지금도 쓰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바로잡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롬(영어)이 아니고 로마, 밀란(영어)이 아니고 밀라노, 네이플스(영어)가 아니고 나폴리, 튜린(영어)이 아니고 토리노라고 하는데 왜 돌로미티가 아니고 돌로미테인가. 이탈리아어에 가장 가깝게 돌로미띠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돌로미테는 이제 돌로미티로 바로잡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돌로미테든 돌로미티든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이치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 브런치의 키워드에 돌로미테가 들어 있다. 얼마나 돌로미테가 굳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