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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하지조차 않은 법조문

문법은 불문율이다

by 김세중

필자는 오늘 '알쏭달쏭한 법조문'이란 제목으로 글을 썼다. 글의 요지는 문법적으로 완벽해야 할 법조문에 문법에 어긋난 조문이 적지 않으니 이를 하루속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조인들이야 공부를 통해서 법조문의 취지를 이해하니 비록 문법에 어긋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일반인들은 문법이 잘못된 법조문을 읽으면 알쏭달쏭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래서 법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법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문법에 어긋난 법조문은 일반 국민에게 법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문법에 어긋난 법조문 중에는 분명 문법에 어긋나지만 알쏭달쏭하지조차도 않은 것도 있다. 문장이 이상한 줄도 잘 눈치채지 못하는 법조문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예로 다음과 같은 법조문을 들 수 있다.


상법 제393조는 다음과 같다.


상법

제393조

제3항 이사는 대표이사로 하여금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상법 제393조는 주식회사에 있어 이사회의 권한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그중에서 제3항은 이사는 대표이사에게 다른 이사나 직원의 업무에 대해 이사회에 보고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제3항의 문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런 뜻으로 이해되기는 하는데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문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한 줄 좀체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 문장은 분명히 잘못됐다. 앞에서 '~로 하여금'이 나온 이상 뒤에는 '보고하게 할 수 있다'나 '보고하도록 할 수 있다'가 와야 하는데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가 나왔기 때문에다. 우리는 '~로 하여금'을 쓸 때 십중팔구 뒤에 '~게 하다'를 쓴다. 그런데 위 조문에서는 엉뚱한 표현이 쓰였다. '~로 하여금'을 굳이 써야겠다면 '보고하게 할 수 있다'라 해야 하고, 반대로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를 써야겠다면 '대표이사로 하여금'이 아니라 '대표이사에게'를 써야 한다. 후자와 같이 쓴 다음 문장은 얼마나 깔끔하고 단정한가.


제393조

제3항 이사는 대표이사에게 다른 이사 또는 피용자의 업무에 관하여 이사회에 보고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요컨대 위 상법 제393조 제3항은 틀린 문장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틀린 줄을 잘 눈치채지 못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틀린 줄을 눈치채기 어려운 법조문도 있다. 헌법 제107조다.


헌법

제107조

제1항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법원은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의하여 재판한다.

제2항 법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국어문법에 어긋난 줄 금방 알아채는 사람은 대단히 문법에 밝고 예민한 사람이다.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문법에 맞고 바르다. 만일 많은 사람 눈에 위 표현이 문법에 어긋난 게 들어왔다면 헌법이 이렇게 만들어졌을 리 만무하다. 헌법은 법률과 달리 국민투표를 거치고 그래서 정말로 수많은 사람이 헌법개정안을 읽어보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틀린 표현이 들어 있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에 위반되는 여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 같은 문법에 어긋난 표현이 헌법에 들어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문법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법조문을 읽을 때 법조문의 취지를 파악하려 하지 법조문이 문법에 맞는지를 잘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문법을 어겼을까 하는 생각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헌법과 법률에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들어 있다. 법 앞에서 우리는 작아진다. 감히 따질 엄두를 못 낸다. 그저 법의 취지가 뭔가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법의 문장은 문법을 완벽하게 지켜야 한다. 이는 불문율이다. 문법을 반듯하게 지킬 때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법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장식물이 아니다. 의사소통의 중요한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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