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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알쏭달쏭한 법조문

법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by 김세중

필자는 여러 해 전부터 우리나라 법조문에 들어 있는 비문(非文)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왔다. '민법의 비문'(2022),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2024)가 이를 뒷받침한다. 책까지 내서 법조문이 말이 안 되는 문장투성이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쳤다. 신문에 글도 쓰고 인터뷰도 몇 차례 했다. 그런데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사회의 반응은 무덤덤하기 그지없었다. 호응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필자가 개선을 요구하는 법조문의 비문이란 어떤 건가. 법조문에는 참으로 많은 비문이 있지만 일례로 이런 것들을 들 수 있다.


민법

제38조(법인의 설립허가의 취소)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 기타 공칙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주무관청은 그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형법

제112조(중립명령위반) 외국간의 교전에 있어서 중립에 관한 명령에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상법

제176조(회사의 해산명령

제1항 3. 이사 또는 회사의 업무를 집행하는 사원이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하여 회사의 존속을 허용할 수 없는 행위를 한 때


형사소송법

제441조(비상상고이유) 검찰총장은 판결이 확정한 후 사건의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것을 발견한 때에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할 수 있다.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에 '조건에 위반하거나', '명령에 위반한', '정관에 위반하여', '법령에 위반한' 같은 표현이 들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문법에 어긋난 것이다. 조사를 잘못 썼다. 목적격조사 을 써야 하는데 부사격조사 를 썼기 때문이다. 위반하다는 목적어를 요구하고 그 목적어에는 목적격조사를 써야 하는데 엉뚱하게 부사격조사가 쓰인 것이다. 문법을 어긴 게 아니고 뭔가.


왜 법조문에서는 위반하다라는 말을 쓰면서 목적격조사가 아닌 부사격조사를 썼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법률의 해당 조문은 '~に 反~'인데 이를 한국 법에 받아들일 때 '~에 위반'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일본 법조문에서 가 쓰였으니까 별 생각 없이 ''라 했을 것이고 '反~'를 '반하다'라 하지 않고 그만 '위반하다'로 바꾸었다. 위반하다로 바꾼 이상 목적어에는 조사 '을/를'을 써야 하는데 ''를 쓴 것이다. 위 민법, 형법, 상법, 형사소송법 조문에서만 '~ 위반하다'라 하지 한국사람은 '~을/를 위반하다'라고 한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다, 규칙을 위반하다, 약속을 위반하다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쨌든 1950년대 및 1960년대초 제정된 위 법률의 '~에 위반하다' 조문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이다. 문법에 어긋나지만 뜻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냥 그대로 두었다. 법조문에 이런 문법적 오류가 참 많다. 일본어를 잘못 번역한 법조문 말이다. 그러나 그 법조문이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있으니 문법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도 누구도 문제삼지 않았다.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민법의 비문>,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 같은 책이 관심을 끌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에 위반하다'보다 좀 더 아리송한 느낌을 주는 조문도 물론 있다. 일테면 이런 거다.


민법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


이 문장을 처음 접하는 한국사람 치고 이 문장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완성하다'는 목적어가 있어야 하는 타동사인데 목적어가 없기 때문이다. 타동사를 써서는 안 될 자리에 타동사 완성하다가 쓰였다. 소멸시효가 완성라 해야 말이 된다. 즉 다음과 같았다면 얼마나 쉽고 빨리 이해되었을까.


제162조

제1항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


그러나 문법에 어긋난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가 처음 읽을 때는 이상하게 느껴져도 자꾸만 보면 볼수록 익숙해져 이상한 줄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제껏 수만, 수십 만 명의 법조인들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처음엔 이상하고 아리송해도 조문의 뜻이 무엇인지 파악되면 더 이상 이상하지도 않고 문제라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렇게 지난 약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법조인들은 그렇다 쳐도 만일 일반인이 위와 같은 법조문을 처음 읽었다 치자. 알쏭달쏭한 느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듯말듯하고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어가 조문의 뜻을 파악하는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알쏭달쏭한 문장 때문에 그만 고개를 저으며 법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이렇듯 문법적으로 잘못된 법조문은 법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요 장벽이다.


법조문에 들어 있는 비문은 있어서는 안 되었지만 1950년대 법률가들이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고 우리는 그것을 바로잡지 않은 채 지금껏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인에게 법률을 이해하는 데 있어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법조문에 알쏭달쏭하고 아리송한 문장이 너무나 많다. 틀린 문장들이다. 국민은 법을 알 권리가 있고 정부와 국회에 법을 바르게 고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 세월 그래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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