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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이 왔다

가제를 '6법은 엉망입니다'로 정했다

by 김세중

나는 몇 해 전 민법을 읽어내려가다가 실로 놀라운 문장을 접했다. 민법 제77조가 그것인데 다음과 같았다.


제77조(해산사유)

① 법인은 존립기간의 만료, 법인의 목적의 달성 또는 달성의 불능, 기타 정관에 정한 해산사유의 발생, 파산 또는 설립허가의 취소로 해산한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


언어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민법 제77조 제2항 문장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사단법인은 사원이 없게 되거나 총회의 결의로도 해산한다."라니! 일반인에게는 아마 그저 좀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아니며 아예 이상한 줄도 모르고 넘어갈 법한 문장이지만 언어학자의 눈에는 대한민국 민법 조문에 이런 기막힌 틀린 문장이 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원이 없게 되거나'는 동사구이고 동사 '-'에 접속어미 '-거나'가 쓰인 이상 이어서 다른 동사구가 나와야 하는데 동사구가 안 나오고 '총회의 결의로도'라는 명사구가 접속되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접속이고 그래서 비문이었다. 어떻게 완벽해야 할 법조문이 비문인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조문은 1958년 2월 민법이 공포되었을 때부터 이랬고 지금까지도 그대로다. 사람들은 법조문의 취지만 이해하면 그뿐 문법에 맞지 않음은 안중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을 처음 읽는 사람은 문법에 맞지 않아 뭔가 이상하다 느끼지 않는가. 이해하는 데 방해를 받지 않는가! 그것은 곧 시간 낭비를 초래하지 않나! 무엇보다 완전해야 할 법조문이 비문이라니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필자는 그때부터 민법 조문을 좀 더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비문이 민법 조문에 들어 있음을 알게 됐다. 캐도 캐도 끝이 없다시피했다. 이런 틀린 문장들로 점철된 민법을 가지고 이 나라 국민이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다. 결국 책을 쓰기로 했고 2022년에 <민법의 비문>을, 2024년에는 민법에서 6법으로 확대해서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썼다.


그러나 사회의 반향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법으로 살아왔는데 왜 새삼 난리냐는 듯했다. 나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명백한 오류들을 낱낱이 지적했건만 왜 세상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최근에야 비로소 그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쓴 책이 재미가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책을 구성하지 못했다. 그러니 세상의 무관심, 무반응은 내가 자초한 것이었지 세상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민법의 비문>과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는 모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썼을 뿐 독자가 듣고 이해하기 쉽게 쓰질 못했다. 법조문이란 원래부터가 딱딱한데 그걸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관점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다.


이제 세번째 책을 내려고 한다.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끝까지 읽어내려갈 수 있게 책을 쓰는 게 목표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세웠다. 첫째, 오류의 단순 나열 방식을 피하기로 했다. 책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구성하는 것이 쓰기 편하다. 그러나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오류를 나열하는 것은 읽기에 지루할 것이다. 처음 한두 장 읽다가 금세 읽어나가기를 포기할 것 같다. 실제 작년에 <대한민국의 법은 아직도 1950년대입니다>를 읽은 한 고교 동창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기도 했다. 어디 그 동창뿐이었을까. 둘째, 무엇이 문제인지 포인트를 몇 개 찾아내 포인트별로 서술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사니, 어미니 하는 문법 용어 사용은 극도로 자제하기로 했다. 그런 용어에 독자들은 머리 아파할 테니 말이다. 셋째, 쉽고 충격적인 오류부터 서술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쉽고 충격적인 오류 예는 누구나 읽고 공감할 것이고 적어도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끝까지 다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오류라 할지라도 독자는 왜 그게 오류인지 잘 이해하기 어려운 사례들은 아예 다루지 않기로 했다. 그런 것 때문에 책을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어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법조문의 말에 오류가 많아도 이날 이때까지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법조인들은 그 법조문이 무슨 뜻인지 알기 때문이다. 한편 일반인은 법조문을 읽을 일도 좀체로 없지만 어쩌다 읽을 일이 있더라도 법에 워낙 깊은 뜻이 들어 있는 듯하니 자세히 따지고 살펴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민법, 형법, 상법은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기본법이다. 온 국민에게 적용이 되니 국민이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 법조문에 들어 있는 오류나 알쏭달쏭한 표현 때문에 국민이 쉽사리 법에 접근할 수가 없다. 국민의 권리가 부당하게 가로막히고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대에는 국민의 지적 수준이 무척 낮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르다. 국민 다수가 대학교육까지 받고 있다. 그런데 틀리고 잘못된 법조문은 지금도 1950년대 그대로다. 그래서 읽을 수가 없다. 이게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새 책의 제목은 <6법은 엉망입니다>로 정해 보았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책의 구성을 매우 어처구니없는 기초적 오류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국민이면 누구나 놀라고 어이없어할 내용으로 채울 참이다. 그런 잘못된 조문이 너무 많다.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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