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에 오자가 수두룩하다니!
법에 오자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법은 완벽하다고 믿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법에 오자가 수두룩하다. 그것도 수많은 법률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6법이 그렇다. 민법 제195조를 보자.
‘타인의 지시를 받어’라는 대목이 있는데 ‘받어’가 오자이다. 누구나 ‘받아’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받아’가 아니라 ‘받어’라 돼 있다. 민법에만 ‘받어’가 있는 게 아니다. 형법에도 ‘받어’가 들어 있다. 다음과 같다.
그리고 이어지는 형법 제270조 제1항에도 또 ‘승낙을 받어’가 나온다. 민법, 형법 하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법률인데 이런 기본법에 오자가 들어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법이 제정되던 1950년대에 이미 ‘받어’라 되어 있었고 6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도 바로잡히지 않은 채 그대로라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그렇지 않다’라는 말을 참 많이 쓰는데 민법에도 이 말이 빈번히 사용된다. 그리고 실제 법조문에는 ‘그렇지 않다’가 아니라 ‘그러하지 아니하다’라 되어 있다. 법조문에서는 보통 준말보다는 본말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하지 아니하다’가 줄면 ‘그렇지 않다’가 된다. 같은 뜻이다. 그런데 민법 제920조의2에 희한한 표현이 들어 있다.
민법의 숱한 조문에서 ‘그러하지 아니하다’인데 오로지 이 조문에서만 ‘그러하지 아니한다’이다. 무슨 이유일까.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 단순한 오자이다. 어떻게 해서 법조문에 오자가 들어 있나. 오자가 있는데도 왜 고치지 않나. 참 의아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학생이 해 온 숙제에 오자가 있어도 선생님으로부터 지적을 받는데 국가의 기틀인 법률의 조문에 오자가 들어 있으니 놀랍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
민법, 형법과 함께 6법의 하나인 상법에도 어이없는 오류가 들어 있다.
‘자본금의 총액에 부족하는 때에는’이라는 대목에서 ‘부족하는’은 누구라도 이상하게 느낄 것이다. ‘부족하는’이라는 말이 국어에 있나? 없다. 왜냐하면 ‘부족하다’는 동사가 아니고 형용사이기 때문이다. 동사에는 ‘가는’, ‘오는’, ‘보는’처럼 어미 ‘는’이 오지만 형용사에는 ‘높은’, ‘작은’, ‘착한’처럼 어미 ‘은/ㄴ’이 온다. ‘높는’, ‘작는’, ‘착하는’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없을 것이다. 그런 말은 없다. 마찬가지로 ‘부족하는’이란 말도 없다. ‘부족한’이라야 하는데 잘못 썼다.
형사소송법에도 오자라고 볼 수밖에 없는 어이없는 표현이 들어 있다.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으로 명백한 때에는’이라는 대목이 이상하지 않은가. ‘공소기각의 재판을 할 것이 명백한 때에는’이라야 말이 되지 않나. ‘것으로’의 ‘으로’는 잘못 쓰였다. ‘것이’여야 한다. 이 또한 오자가 아닐 수 없다.
민법에는 ‘대리’의 개념이 중요한데 민법 제118조는 대리권의 범위에 관해 다음과 같은 조항을 두고 있다.
‘권리의 성질을 변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권리의 성질이 변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든지 ‘권리의 성질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라야 말이 된다. ‘성질을 변하지’는 말이 안 된다.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어 시간에 ‘로서’와 ‘로써’는 뜻이 다르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로서’는 자격을 가리키고 ‘로써’는 도구나 수단을 가리키니 문맥에 맞게 ‘로서’와 ‘로써’를 가려서 써야 한다. 그런데 상법 제520조의2는 다음과 같다.
문맥상 자격을 가리키는 게 분명한데 ‘회사로써’라 돼 있다. ‘회사로서’라야 맞다. 이 또한 오자가 아닐 수 없다.
오자는 또 있다. 민법 제829조는 다음과 같다.
‘혼인성립까지에’에서 끝의 ‘에’는 이유 없이 들어갔다. ‘혼인성립까지’라야 하는데 말이다. 뜻을 파악하는 데는 아무 문제없는 사소한 오류라 하겠지만 법조문에 이런 오류가 들어 있다니 좀체 믿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민법 제679조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조사가 빠져 있다.
‘그 행위를 완료한 자 있기 전에는’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완료한 자’에서 ‘자’에 조사가 붙어 있지 않다. 명사에 조사가 붙어 있지 않다니 국어 문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또한 오자이다. 당연히 ‘완료한 자가’라야 옳다. 지난 세월 우리는 법조문 속의 오자는 사소한 문제라 보고 바로잡지 않고 지내왔다. 그러나 이런 오류투성이 법에 국민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나. 이런 법을 국민에게 믿고 따르라고 할 수 있나. 오류는 바로잡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오자를 고치는 것도 법률 개정을 통해서만 할 수 있고 법률 개정은 국회의 권한이다. 법률안 발의는 정부도 할 수 있고 국회의원도 할 수 있다. 정부가 발의하든 국회의원이 발의하든 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해서 법에 들어 있는 오자를 없애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일에 너무 게을렀다. 그러나 계속 이런 혼란스러운 상태 그대로 둘 것인가. 안 된다. 더 미루고 있을 수 없다.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은 기적 같은 성장을 이뤄 선진국이 되었지만 6법 조문만큼은 후진적이기 그지없다. 법조문에 오자라니! 국민이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국회가 움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