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문에 들어 있는 일본어는 솎아내야
우리나라는 1948년에 대한민국정부 수립을 했지만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제정했을 뿐 여타 법률은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민법, 형법이 없었다. 물론 정부는 정부 수립과 동시에 법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해서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 법률 제정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법률은 워낙 방대해 단시일 안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년이 걸렸다. 그래서 형법은 1953년에 제정, 공포되었고 민법은 1958년에 제정, 공포되었다. 그때까지는 일제강점기에 썼던 일본의 민법, 형법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1953년에 공포된 형법, 1958년에 공포된 민법도 실은 일본 법을 크게 참조했다. 놀랄 만큼 똑같은 조문이 적지 않다.
일본 법을 참조해 1950년대에 만든 형법, 민법은 일부 개정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그리고 이들 법에 일본어 흔적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민법 조문을 처음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주물’, ‘종물’ 같은 어려운 법률용어가 쓰이기도 했지만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 같은 말은 그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낯설기 그지없다. ‘상용(常用)’은 뭐고 ‘공(供)하다’는 뭔가? ‘상용’은 그나마 국어사전에 있으니 찾아보면 알 수 있지만 ‘공하다’는 국어사전에도 없다. 일상생활에서도 물론 쓰지 않는다.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말이 ‘공하다’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민법에는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라는 표현이 들어오게 되었을까? 일본 민법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이다. 해당하는 일본어 민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법 조문의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는 일본 민법 조문의 ‘常用に供するため’와 일치한다. 일본 민법의 ‘供する’를 그대로 옮겼는데 국어에는 ‘공하다’라는 말이 없다.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의 ‘공하기’는 일본어 단어다. 우리말에는 ‘공하다’가 없고 ‘제공하다’ 또는 ‘이바지하다’가 있을 뿐이다. 어쨌거나 ‘그 물건의 상용에 공하기 위하여’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표현이다.
‘공하다’는 민법 제100조에만 나오지 않는다. 형법, 형사소송법에도 나온다.
이들 법률의 ‘공하는’, ‘공할’도 역시 일본 법조문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공하다’는 일본어지 우리말이 아니다. 우리말에 ‘공하다’라는 말은 없다.
민법의 제1편 총칙의 제2장은 제목이 ‘인(人)’이다.
그런데 희한하다. 제목은 ‘인’인데 조문 본문에는 ‘인’이 아니라 ‘사람’이다. 즉,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이다. 제목과 본문이 다르다. 민법 제2장의 제목 ‘인’은 일본 민법과 똑같다. 일본 민법 제1편 제2장의 제목이 ‘人’이다. 우리 민법은 그걸 그대로 가져왔다.
그런데 일본어에서는 ‘人’이 단어로 쓰인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인’이 독립된 단어로 잘 쓰이지 않는다. ‘인의 장막’과 같은 굳어진 관용어구에서나 ‘인’이 쓰일 뿐 다른 데서는 ‘사람’이라고 한다. “저기 사람이 온다.”라고 하지 “저기 인이 온다.”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는 해도 ‘인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일본어와 우리말의 다른 점이다. 민법 제2장의 제목 ‘인’은 마땅히 ‘사람’으로 바꾸어야 한다.
법에는 ‘지(地)’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상법 제364조는 다음과 같다.
‘이에 인접한 지에’라는 표현이 있다. 일본어에서는 ‘地’가 명사로서 흔하게 쓰이는 말이지만 국어에 ‘지(地)’라는 단어는 없다. ‘땅’이나 ‘곳’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에 인접한 지에’는 ‘이에 인접한 곳에’로 바꾸어야 한다.
형법에 아주 기가 막힌 말이 있다. ‘조지하거나’이다. 형법 제136조는 공무집행방해에 관한 죄를 규정하는데 다음과 같다.
제1항과 제2항은 모두 공무집행방해이지만 서로 다르다. 먼저 제1항은 쉽게 이해된다. 직무를 집행하고 있는 공무원을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음주단속을 하는 공무원을 밀치거나 폭행하는 경우, 주차단속을 하는 공무원을 폭행하는 경우다. 제2항은 제1항과는 좀 다른데 제2항에서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는 ‘공무원에 대하여 그 직무상의 행위를 억지로 시키거나 또는 하지 못하게 하거나’라는 뜻이다. 전자는 예를 들어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는 공무원에게 부당한 인허가를 하도록 억지로 시키는 경우이다. 후자는 예컨대 공무원이 불법 퇴폐업소에 대해 영업 정지처분을 내릴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런 처분을 하지 못하게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경우이다. 문제는 후자에 해당하는 ‘그 직무상의 행위를 조지하거나’라는 표현이다.
‘그 직무상의 행위를 조지하거나’가 대체 무슨 뜻인가? 아마 그 누구도 이 말의 뜻을 선뜻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 형법에 이런 이상한 표현이 들어오게 된 데는 불행한 사연이 있다.
‘조지하거나’는 한자로 ‘阻止하거나’이다. 그런데 ‘조지(阻止)하다’는 국어에 없는 말이다. 국어에는 ‘저지(沮止)하다’가 있을 뿐이다. 그럼 ‘조지(阻止)하거나’는 어떻게 해서 형법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일본어에는 ‘沮止’가 없고 대신 ‘阻止’(일본어 발음으로 ‘쇼지’)가 못하게 한다는 뜻의 말이다. 일본어에 익숙하고 밝았던 1950년대 우리 법률가들은 형법을 만들면서 국어 단어 ‘沮止’를 쓰지 않고 무심코 일본어 단어 ‘阻止’를 우리 형법에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 우리 법조계에서는 지난 세월 ‘阻止’를 ‘沮止’로 이해하고 살아왔다. 阻나 沮나 한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阻止라 적혀 있었어도 沮止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법령집이 한글로 발행되기 시작했다. ‘阻止하거나’는 ‘조지하거나’로 적힐 수밖에 없었다. ‘阻’의 음이 ‘조’기 때문이었다. 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저지하거나’로 적는 것은 불가능했다. 요즘 한글 법전에서 형법 제136조 제2항은 ‘그 직무상의 행위를 강요 또는 조지하거나’라 되어 있다. 그래서 ‘조지하거나’가 무슨 뜻인지 누구나 의문을 느낀다. ‘저지하거나’의 오자가 아닌가 의심하기 마련이다. 오자가 아니다. 1953년에 형법이 만들어질 때 ‘阻止하거나’였고 그게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지하거나’로 적힐 수밖에 없다. 형법에 들어 있는 일본어 ‘阻止(조지)’는 하루속히 우리말 ‘저지(沮止)’로 고쳐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조문을 이해할 수 있다. 국어에 ‘조지하다’라는 말은 없다. ‘阻止’는 일본어다.
또 형법에는 ‘흡식(吸食)’이라는 좀체 보기 어려운 말이 쓰이고 있다.
‘흡식’이 무슨 뜻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아도 ‘흡식’은 없다. ‘흡식’은 일본 형법 조문에 있는 말이다. 관련되는 일본 형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일본 형법의 ‘吸食’이 우리 형법에 고스란히 그대로 들어왔다. ‘들이마시다’ 또는 ‘흡입하다’ 같은 말은 흔히 쓰이는 말이므로 이해할 수 있지만 ‘흡식’은 도무지 낯설기 그지없다. 사실 ‘吸食’은 일본어에서도 일상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법조문 같은 데서나 쓰는 어려운 말이라고 한다. 어쨌든 ‘흡식’, ‘흡식하다’는 일본 형법에 쓰인 말을 그대로 가져온 일본어로서 우리 국민이 쓰지 않는 말이다. 하루빨리 우리 법조문에서 들어내야 마땅하다. 더 쉽고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말을 써야 한다. 1953년 형법 제정 때 들어온 ‘吸食’을 지금껏 두고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민법에 ‘언(堰)’이라는 말이 나온다. ‘언’이 쓰인 민법 제230조는 다음과 같다.
한글로 된 이 조문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언’이 뭔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조문의 원문은 한자로 적혀 있고 다음과 같다. 편의상 한글로 적혀 있을 뿐이지 원문은 한자로 되어 있다.
독자들은 ‘堰’이라는 한자를 잘 접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堰’은 ‘둑 언’이다. ‘둑’이라는 뜻이다. ‘둑’이라고 하면 될 것을 1950년대에 민법을 제정하면서 ‘堰’이라 했다. 해당 일본 민법 조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법 조문이나 일본 민법 조문의 내용이 대체로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堰', '水流地', '對岸' 같은 말은 똑같다. 문제는 ‘堰’, ‘水流地’ 같은 말이 일본어에는 있는 말이지만 우리말에서는 쓰이지 않는 말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조문에 우리말이 아닌 말이 들어 있다. 일본 법에 있는 일본어 단어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조문을 읽어도 우리말 같은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다.
민법에는 ‘구거(溝渠)’라는 말도 쓰이고 있다. 민법 제229조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구거(溝渠)’가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좀체 쓰지 않는 말이고 들어보지 못한 말이기 때문이다. ‘구거’는 작은 도랑이라는 뜻이다. 수류지는 물이 흐르는 땅이다. 도랑이나 물이 흐르는 땅의 소유자는 건너편의 땅이 남의 것일 때는 수로나 수류의 폭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위 조문의 뜻이다. 수로나 수류의 폭을 바꾸면 남의 땅이 범람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거’, ‘수류지’, ‘대안’ 같은 어려운 말 때문에 무슨 뜻인지 좀체 알 수 없다. 이들 말은 모두 일본 민법에 있는 溝渠, 水流地, 對岸을 우리 민법에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구거’는 ‘도랑’으로 바꿀 때 비로소 조문의 뜻이 쉽게 이해된다.
‘인수(引水)’, ‘여수(餘水)’ 같은 말도 민법에 들어 있다. 다음과 같다.
‘저수’, ‘배수’ 같은 말은 ‘저수지’, ‘배수펌프’ 같은 말이 있으니까 무슨 뜻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인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뜻을 물을 끌어온다는 것이다. ‘끌어오기 위하여’ 하면 될 것을 ‘인수하기 위하여’라고 했다. ‘저수’, ‘배수’, ‘인수’는 모두 일본 민법에 있는 말이다. ‘저수, 배수 또는 인수하기 위하여’는 ‘물을 저장하거나 빼거나 끌어오기 위하여’라고 하면 알기 쉽다. 2015년 제19대 국회 때 법무부는 민법 조문을 알기 쉽게 현대화한 민법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냈다. 그 개정안에 ‘물을 저장하거나 빼거나 끌어오기 위하여’라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법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고 폐기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저수, 배수 또는 인수하기 위하여’ 그대로이다.
민법 제226조와 제228조에 나오는 ‘여수’도 역시 일본 민법 조문의 ‘餘水’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경우이다. 이 역시 제19대 국회 때 제출된 민법개정안에는 ‘남는 물’, ‘남은 물’로 알기 쉽게 바뀌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지금도 여전히 ‘여수’ 그대로다.
형법에 ‘지득하다’라는 말이 있다. 형법 제317조는 다음과 같다.
‘직무처리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 ‘직무상 지득한 사람의 비밀’에 ‘지득한’이란 표현이 들어 있다. ‘지득(知得)한’은 ‘알게 된’이라는 뜻이다. ‘알게 된’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지득한’이라는 말을 썼다. 일본 형법에 ‘知り得’이란 말이 쓰이고 있는데 우리 형법에 ‘知得’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법률에서 비밀누설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일테면 개인정보보호법, 건축물관리법, 건축사법, 결핵예방법, 경범죄 처벌법, 공직자윤리법, 국가공무원법, 국회법, 국민연금법, 상법, 소득세법, 약사법, 주택법, 청소년 보호법, 특허법, 화장품법 등 형법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법률에는 ‘지득한’을 쓰지 않고 ‘알게 된’이라고 하고 있다. 유독 형법, 국가보안법에서만 ‘지득한’이 남아 있다. 뜻은 ‘알게 된’과 똑같다. 형법에 남아 있는 ‘지득한’은 하루빨리 ‘알게 된’으로 바꾸어야 한다.
민법, 형법, 상법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법률은 국민 생활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민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법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법, 형법, 상법 등에 일반 국민이 알 수 없는 일본어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서 법을 읽어도 법의 내용을 알 수 없다. 광복 80년이 지났지만 일본이 남긴 잔재가 법률 속에 뿌리 깊이 남아 있고 그 잔재 때문에 법을 알고 싶어도 알기 어렵다. 법조문 속에 남은 일본어는 솎아내야 한다. 우리가 모르는 일본어가 우리 법조문 속에 들어 있다니 어디 될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