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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줄이기

빠뜨린 글자가 있다

by 김세중

한 신문의 칼럼에서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당권을 거머고 했기 때문이었다. 거머쥐었거머로 줄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쥐었이 줄면 이 되는 게 맞나? 주었이 줄면 이 되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그럼 쥐었이 줄어도 이 되고 주었이 줄어도 이 된다는 말인가? 그럴 수가 있나?


c.jpg '거머줬다'가 눈길을 끈다


신문은 전통적으로 한 글자라도 줄이고자 애써 왔다. 한정된 지면에 조금이라도 더 싣자면 줄일 수 있는 최대한 줄이려 한다. 뜻만 통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 해도 줄일 수 없는 것까지 줄여서야 되겠는가. 거머는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의문을 낳지 않나. 한 글자 줄이려다 말이다.


거머줬다를 보면서 준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말 동사에 사귀다도 있고 할퀴다도 있다. 쉬다도 있다. 모두 어간이 ''로 끝난다. 여기에 어미 ''나 ''이 오면 사귀어, 할퀴어, 사귀었, 할퀴었이 된다. 그런데 모임이 연이어 오는 걸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자연히 줄이려고 한다. 그래서 네 음절인 사귀었다를 줄여서 세 음절로 발음하기 마련이다. 한국사람은 누구나 다 세 음절로 발음하지 네 음절로 발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첫 음절은 고 마지막 음절은 다. 가운데 음절은 뭔가? 어떻게 적는가? 적을 방법이 없다.


발음은 분명 세 음절로 하지만 글자는 세 음절로 적지 못한다. 자판에 글자가 없어 타자를 칠 수 없으니 그림으로 그려 보았다. 다음과 같다.


c2.png 원 안의 글자는 기계에서 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국사람의 입에 늘상 밴 말이 한글의 우수성이다. 표음 능력이 뛰어나다고 찬탄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흔히 발음하는 소리를 적지 못한다. 미처 이런 소리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으로 말할 때는 세 음절로 발음하지만 글자로 적을 때는 네 글자인 사귀었다로 적거나 아니면 엉뚱하게 사겼다로 적기도 한다. 사귀었다는 발음 현실과 맞지 않고 사겼다 역시 그렇다. 진정 한글이 우수하다고 자부하려면 글자를 더 만들어야 한다. 입으로 분명히 내는 소리를 적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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